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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뉴욕에서 당신 작품의 거대한 회고전이 열렸지요. 왜 당신은 거기에 가지 않았나요?

글쎄, 그건 당신이 그 당시에 그 행사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에 날려 있지요. 또한 당신 눈앞에 걸려 있는 당신 자신의 작품이 당신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안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러한 종류의 행사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다양하고, 그리고 때때로 나는 내가 해놓은 작업들이 다소 범속하며 그밖의 어떤 것들보다 더 형편없다는 걸 발견합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항상 내 전시회를 보러 가고 싶어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그건 또한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보기 위하여 당신은 어떤 감정 상태에 있어야만 하며, 당신이 처한 상태에 따라 당신의 지각도 변화하지요.

그래서 간단히 말하면, 모든 지각은 상대적이다?

네, 그림을 볼 때는 늘 그렇지요. 그러나 물론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의 방식으로 그것을 번역하지요. 앵그르의 초상화들이 내게 주는 인상은 그밖의 누군가에게 주는 인상과는 사뭇 다르지요. 그리고 그건 단순히 내가 화가이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니지요. 당시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떤 사람의 얼굴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지요. 당신은 어떤 인상을 받고 그래서 당신은 그러한 인상에 기초하여 온갖 종류의 분석을 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얼굴을 본 다른 누군가는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불가사의한 일이지요. 이와 똑같은 현상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오렌지 색에도 적용됩니다. 왜 내가 그것을 그토록 아름다운 색채로 생각하는지를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화가의 잔인한 손 232)

T.

일체유심조. 모두가 다, 일절 예외없이 다 마음이 만든다.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지각이 달라진다. 아니, 틀렸다. 정확히 말하면 내 마음이 따로 있어 마음이 그림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의 상태가 곧 '지각된' 것이다. 그림이 우울해 보이면, 그림이 우울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곧 우울한 마음이다. 그림과 마음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를 소산적 일체유심조 부르자.

그림이 우울해 보이는 건 그림이 우울한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보는 것임을, (체험을 증거로 말하면) 나에게 그렇게 보여지는 것임을 소산적 일체유심조라 하고, 내가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마음, 즉 내가 그림을 우울한 그림으로 지각하고 있음을 내가 자각하는 마음을 능산적 일체유심조라고 부르자. 능산적 일체유심조는 소산적 마음에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마음이다. 장황하게 말을 하게 됐지만 일체유심조에는 두 마음이 있음을 구분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몸과 맘은 소산적 일체유심조로 결정되어 있다. 내가 지은 인연에 따라 마음이 그리는대로 보여지도록 결정되어 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업이고 마뚜라나식으로 말하면 구조적 결정론]

그런데 이런 마음,

모든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되,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니,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금강경 10분)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내는 마음, 말하자면 소산적 일체유심조에 머무는 바 없이 내는 마음이 능산적 일체유심조이다. 능동적으로 내는 마음인 능산적 유심조는, 소산적 일체유심조의 모든 분별을 내려놓고, 그 마음을 항복받는 마음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체험으로 알듯이, 이미 소산적 일체유심조로 결정되어 있다. 우리는 운명처럼 소산적 일체유심조의 작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능산적 일체유심조가 소산적 일체유심조와 상호작용하면서 능산적 일체유심조와 소산적 일체유심조의 구분을 사라지게 한다. 말하자면 만들어지는 소산적 일체유심조이면서 동시에 만들어가는 능산적 일체유심조의 순환이 빙빙빙 소용돌이 치면서 능산적 일체유심조가 소산적 일체유심조이고 소산적 일체유심조가 능산적 일체유심제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산적 일체유심조를 아는 것이 아니라 능산적 일체유심조와 그 순환의 복덕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앎의 앎이다. 안다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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