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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믿음은, 반복적이거나 순환[재귀]적인 상호작용들의 흐름을 지각한, 그래서 구조적으로 연동된 살아 있는 존재들을 관찰한 관찰자의 논평입니다.

'폐쇄적이고, 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들인 우리가 조화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체계들이 구조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의 외적 작용체는 체계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변화는 섭동하는 작용체에 의해 유발되지만 섭동 체계의 구조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외적 충격이 체계의 조직을 파괴함으로써 체계를 분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체계들이-구조적 변화로 인하여-접촉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체계들은 어떤 응집 형태를 보존함으로써 계속해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호작용의 최종 형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함으로 138)


2.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의 불가능성을 인지하고 소통을 하려한다면 상대가 내 말을 듣게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방법 밖에 없다. 또 상대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 기다린다.
소통은 경청이다. 소통은 경청 대 경청, 경청의 순환이다. 나의 말을 소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지시명령적 소통은 불가하다. 그에게 맞는 방편을 쓰거나 기다림이 필요하다.

3.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시명령적 관계가 이뤄지는 것은 권력과 복종의 상호작용이다. 권력과 복종은 어떻게 가능한가? 복종은 그 결과를 욕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가령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라든지 또는 어떤 댓가를 기대함으로서.
지시명령적 관계는 이해관계에 따른 권력과 복종의 상호작용이다. 대표적으로 군대, 회사, 학교. 반면 가족은, 가족간의 갈등이 생기면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하다. 가족은 대개 권력과 복종의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4.

자녀가 부모 말을 안듣는다면 부모가 자녀 말을 안듣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말을 경청하지 않음으로서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부모의 말을 안듣는 건 자녀의 잘못이 아니다. 원래가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하다. 다만 소통을 위해 기다리며 경청할 준비를 한다. 어떤 갈등이든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의 불가능성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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