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알로 나는 것, 태로 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화하여 나는 것, 빛이 있는 것, 빛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내가 다 완전한 열반에 들게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수가 없고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되 실로 제도를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이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경>


2.

법륜스님이 상담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상담사로서 환자들이 희망을 찾도록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How do I work with patients who doesn’t see any hope in their life and it's clearly they are suffering from mental health problems? As a counselor, how can I help them while managing my own anxiety? Sometimes I feel helpless especially when they do not see hope in their life. So I wonder it's on my way to help my own anxiety. What could I be helpful as a counselor being able to see them to their own hope in their life.”
(제가 어떻게 하면 삶에 전혀 희망이 없는 약물 중독 환자들과 함께 잘 지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정신과적인 문제로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카운슬러로서 어떻게 제 불안을 조절하면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가끔 저는 전혀 희망이 없는 분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일이 제 불안을 돕는 길인지 의아할 때도 있어요. 어떻게 하면 카운슬러로서 그들의 삶에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갖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습니까?”

“Probably not.”
(아니요.)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왜 괴로울까요?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괴로운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그 착각이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남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 있습니까?”

“No”
(아니요.)

“그런데 내가 그걸 못 해 준다고 해서 왜 괴롭습니까?”

“I guess a sense of responsibility that minimizes the possibility of someone who's going to harm themselves and protect their life.”
(저는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질문자는 지금 착각을 하고 있어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전제를 갖고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밥 한 끼는 해줄 수 있겠다’
‘얘기하면 들어줄 수는 있겠다’
‘화장실 갈 때 불편하면 부축을 좀 해줄 수는 있겠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를 위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은 정도에 불과합니다.

질문자도 우선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줄 수는 있잖아요. 몇 마디 말로 그 사람들의 마음병을 고쳐 주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과 대화할 때 별로 부담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모르는 것에 대해 물어보면 저는 모른다고 대답해 버립니다. 어떻게 제가 다 압니까? 모르는 게 아는 척하려고 하면 괴롭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얘기를 하든 그저 편안하게 듣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할 뿐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도움이 됐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도움이 안 됐다고 합니다. 도움이 됐다고 해도 대부분이 제가 말한 대로 행하지는 않습니다. 다음에도 똑같은 질문을 또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얘기해도 실행하지 않을 꺼면서 왜 또 물어요?’ 이렇게 말하지 않잖아요. 묻는 것은 그의 일이고, 대답하는 것은 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의 병이 저에게 전염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속에 살다 보니 그 괴로움이 자신에게도 전염이 된 거예요. 바이러스 환자하고 같이 있다가 바이러스에 전염되는 것과 같습니다. 왜 전염이 됐을까요?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전염이 된 거예요.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손잡아 주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해주면 됩니다. ‘어떻게 말하면 이 사람의 슬픔을 없앨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저 대화를 할 뿐이지 누구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어요. 그가 도움을 얻었다면 그것은 내가 도와준 것이 아니라 그가 자각한 거예요.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그 속에서도 내가 전염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손을 잡아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그냥 손만 잡아 주면 돼요.

어떤 사람이 울면, 손잡아 주거나 껴안고 가만히 있어주면 되지, 무슨 말을 자꾸 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상담은 말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약 먹지 마라!’ 이런 얘기를 해서 들을 사람이면 왜 마약 중독이 되겠어요? 이럴 때는 오히려 ‘그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요? 어떻게 먹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물어보는 게 중요해요. 마약을 먹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 행위에 대해서 막 신나서 얘기를 합니다. 그때 ‘그래서 결과가 좋아졌어요?’ 이렇게 물어보면 결과가 안 좋아졌다고 얘기할 겁니다. 이 정도로만 대화를 나누어야지 ‘그런 걸 왜 먹어요? 먹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내 말을 안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들어줄 것을 자꾸 기대하면 나중에 내 말을 안 듣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꾸 싫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그냥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래서 결과가 좋아졌어요?’ 이 정도로만 대화를 나누면 됩니다. 필요하면 다음에 또 상담을 하면 되고요. 왜냐하면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첫째,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면 아예 만나지 말든지, 만약 만나야 한다면 이렇게 대응을 해야 괴롭지 않습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외면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을 너무 강하게 가지면 집착을 하기 때문에 결국은 상대에게 도움도 안 되고 나도 지치게 됩니다. 길 가는 사람하고는 안 다투면서 왜 가족, 형제, 애인, 친구 하고는 다투나요? 관심이 지나쳐서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질문자는 지금 전문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웃음)

저는 제 자신이 상담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병들지 않아요. 그래서 즉문즉설을 하고 나서 돈도 받지 않습니다. 질문자는 상담하고 나서 돈을 받으니까 그게 문제예요. (웃음)


그래도 돈을 받았으니까 밥값은 해야 될 거 아닙니까? 밥값을 하기 위해서 상대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임해 보면 자꾸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저도 공동체에 들어온 젊은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제가 잔소리를 많이 하면 젊은이들이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싫어하겠죠.”

“집에 있으면 부모가 밥도 주고 옷도 주고 방도 주고 공부도 시켜주는데, 왜 집을 나와 절에 와서 일할까요? 부모의 잔소리 때문에 그래요. 지나친 관심이 결국 사람을 감옥에 갇힌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외면하라는 게 아닙니다. 관심이 지나치면 나도 피곤하고 상대도 피곤하다는 겁니다. 연애를 할 때도 애인의 관심이 지나치면 갈등이 되거든요.”

“Thanks so much for giving me the insight. It was a good time for me to reevaluate my role as a counselor. I definitely agree with you the point about forced sense of my responsibility as my job and I’ll keep that in mind your suggestions going to work, be with the person, curious about their experience instead of me passing out so called wisdom from you orthe Dharma talk. Again it was very helpful, thank you.”
(통찰을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상담사라는 제 역할에 대해 재평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강압적 책임에 대한 스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환자들의 경험에 오히려 궁금증을 가지라는 조언을 명심하겠습니다.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너무 내가 상담사라는 생각을 갖지 마세요. ‘상담해서 이걸 도와줘야 한다’ 이런 생각도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친구처럼 접근해보세요. 요즘은 사람들이 대화할 사람이 없잖아요. ‘얘기를 많이 들어준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아주 훌륭한 상담사가 됩니다.”

“Thanks you.”
(감사합니다.)

<스님의 하루 (211017)>


T.

1.
-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하다.
-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다 완전한 열반에 들게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수가 없고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되) 실로 제도를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 ‘어떻게 말하면 이 사람의 슬픔을 없앨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저 대화를 할 뿐이지 누구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어요. 그가 도움을 얻었다면 그것은 내가 도와준 것이 아니라 그가 자각한 거예요.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그 속에서도 내가 전염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2.
- 오늘날 원인과 결과(투입과 산출)의 결합을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은 현대적 미신이다.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에 열심히 해도 어차피 안 된다며 자포자기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열심히 하면 무조건 잘된다는 법칙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자유(불수자성수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실과 생각  (0) 2021.12.04
착각은 자유다  (0) 2021.12.02
무아 도일체고액(feat 한강)  (0) 2021.10.15
소통과 지시명령 상호작용의 불가능성  (0) 2021.10.05
무유정법과 대붕  (0) 2021.10.01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