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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실재성과 완전성은 동일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세상의 모든 것, 곧 실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라는 뜻이며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가 모두 공하다는 일체개공과 회통하는 말이다.

공하다는 것은 그자체로 완전한 것이어서 그 자체에 좋고 나쁨이 있지 않으며

그자체로 완전하여,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따라서 여기에 따로 지혜는 없으며 또한 얻을 것도 없다.(無智 亦無得)

다만 있는 그대로 보면 그뿐이다. 이를 반야심경에선 조견(照見)이라 했다. 있는 그대로를 '환히 비춰본다'는 말이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의 '1장 신에 대하여: 부록'에서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지 않고 단지 사물을 표상만 하는 사람들은, 사물에 관하여 아무것도 긍정하지 않고 표상력을 지성으로 여기기 때문에, 사물 및 자신들의 본성에 대해 무지한 채로 사물안에 질서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표상력은 사물을 감각적으로 표상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물의 본성에 의지해 사물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나의 감각에 어떻게 표상하느냐에 따라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자기의 감각이 느끼는 형편에 따라 사물을 선하거나 악하다고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물을 사물의 기준이 아닌 자기의 기준으로 사물을 분별하는 것으로 불교식으로 말하면 분별심이다. 반면 스피노자가 말하는 "사물을 지성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교식으로 말하면 바로 '조견'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논한다. 만일 만물이 신의 가장 완전한 본성의 필연성에서 생겼다면, 자연계의 그토록 많은 불완전성은 어찌 된 일인가? 이를 테면 악취를 풍기게 될 때까지의 물건의 부패, 욕지기나게 하는 물체들의 추한 형상, 혼란, 해악, 죄 등은 어찌 된 일인가? 그러나 내가 방금 말했듯이, 이에 대해서는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물의 완전성은 전적으로 그 사물의 본성과 능력에 의해서만 평가되어야 하고, 따라서 사물은 인간의 감각을 즐겁게 해주거나 불쾌하게 한다는 이유로, 혹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거나 거슬린다는 이유로 더 완전하거나 덜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신'은 불교의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법'과 회통한다. <에티카>를 읽다보면 그 회통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 하나를 예로 들자면, 스피노자의 신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신과 다르다. 그러면서도 흔히 알고 있는 그 신의 개념을 맘껏 활용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신은 신이라는 개념에 내재해 있다. 그렇게 때문에 스피노자의 신은 (신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신이면서 또 신이 아니다. 이는 불교가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과 회통한다. 불교 역시 종교이면서 종교가 아님을 내재하고 있다. 이런 묘함, 절묘함이 내가 스피노자와 불교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는 지점 중에 하나이며 이는 내가 미학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굉장한 끌림을 받는 이유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바 있던 미학과 윤리학은 같은 것이라는 말에 깊히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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