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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따르면 정신은 신체를 대상으로하는 신체의 관념인데, 때문에 명상은 정신을 통해, 즉 신체의 관념을 통해 신체를 바라보는 행위이다.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정신이 신체의 관념이란 신체와의 합일을 근간으로 하는 분리에 있다. 따라서 생각하는 나는 나 이전에 존재하는 의심할 수 없는 주체가 아니며 더욱이 생각하는 나란 곧 신체의 관념이기 때문에 신체와 외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신체의 관념을 표현하는 언어를 통해 표상되는 허상을 주체로 호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나는 도대체 나의 신체의 의지나 욕구의 주체가 될 수가 없다. 생각하는 나가 나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나는 실로 불가에서 말하는 색수상행식의 윤회를 통해 쌓인 업의 습관일 뿐이다. 이 습관이 나에게 유리한 것을 표상하도록 작동하게 하고 진정 나를 움직이고 있다.(우리는 사물에 대한 표상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데서 즉 사물을 사물의 속성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감각되는 표상을 통해 인식하기 때문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한다.) 그래서 흔히 말하기를 나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할 때 나 자신이란 바로 나를 움직이는 업식 또는 무의식이다. 명상은 이런 나의 업식을 바라보는 과정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묻고 알아가는 것이다. 내 몸의 주인인 내가 어떻게 내 몸에 대해서 모를 수가 있는가?라고 물음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나는 허상이며, 대신 정신은 신체의 관념의 관념을 인식하므로서 보다 큰 완전성의 신체로 또는 보다 작은 완전성의 신체로 이행하는 신체를 포착할 수 있을 뿐임을 알게된다. 여기서 우리는 보다 큰 완전성의 신체로의 이행을 인도하는 지도를 이성이라 하고 이성의 바른 지도를 통해 신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단 이성의 바른 지도란 실상에서 정해져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실험과 도전, 수행을 통해 이룩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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