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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또한, 인간들이 - 자율적이지만 자유롭지는 않은 - '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들이라고 주장하는 군요. 이렇게 힘 있는 용어는 결정론의 특징을 강조하면서, 선생님은 어떻게 여전히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요? 나의 테제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 책임을 주장할 수 있다.'
바로 그렇습니다. 생명체계들은 아무런 의도도 목적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존재의 흐름 속에서 살아갑니다. 오직 인간들만이 언어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관계들의 영역 속에서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어떤 행위를 책임 있는 것으로 서술할 수 있습니다. 언어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우리의 행위가 미친 결과들을 성찰하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배려는 현존하게 되고, 책임질 수 있는 행위의 가능성이 나타납니다. (122)
T.
언어는 칼같다. 칼은 유용하지만 위험하다. 누군가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산다. 그러나 언어는 감옥이 아니다.
언어는 감옥이 아닙니다. 언어는 하나의 존재 형식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자 방법입니다. '언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라는 단순한 표현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다른 공간이, 즉 언어를 넘어서는 [초월하는] 어떤 공간이 - 설령 그곳에 결코 다다를 수 없다 할지라도 - 존재한다고 믿도록 만듭니다. 나는 그렇게 가정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언어를 넘어서 존재하는 어떤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뜻합니다. 정말이지, 그와 비교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만일 모든 것이 우주의 일부라면, 우리는 도대체 그 우주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대답은 자명합니다. '내가 가는 곳이 모두 우주이다.' 우리는 분리할 수 없이 더불어 움직입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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