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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

연기적 사고 : 지성의 주인

T1000.0 2019. 12. 4. 22:04
1.

어디선가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이유가 정당한 이유는 아니겠으나, 어떤 일이든 이유는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를 침착하게 찾아내어 당면한 사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성의 능력이다.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심지어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인 경우에도 우리는 훨씬 편하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갖게 된다. 급한 일이 있음을 안다면, 그가 자동차를 급하게 모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 되며, 무리한 추월조차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니, 화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 어떤 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일이 벌어진 이유가 내 지성의 능력 밖에 있음을 뜻한다. 즉 "이해할 없어!"는 내 지성의 무능력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은 자신의 지성이 전제하고 있는 것만으로 판단하려는 태도를 무심결에 토로하는 무지의 표출이다.
 
그 무능력한 자신만의 지성에 머물러 있는 한, 지성의 노예를 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어!"는 그 노예의 언사고, 거기 동반되는 분노는 노예의 감정이다. 대개는 내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심하면 누구처럼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는 그런 감정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게 어떤 종류의 일이든, 내 지성의 한계가 드러나는 사태다. 따라서 그것은 내 지성이 자명하다고 가정하는 전제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 그럼으로써 내 지성의 한계를 확장할 기회를 뜻한다.

"이해할 수 없어"라는 단언을 "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으로 바꾸는 순간,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저 이해할 수 없는 이의 입장에 서는 순간, 비로소 나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게 된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지성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지성을 부리는 '주인'이 된다. (삶을 위한 철학수업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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