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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 년 전에, 잘 아는 분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고생만 하시고 호강도 못 해 보고 돌아가신 것이 슬퍼서 그 보살님은 영안실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요. 몸부림치면서 우는데 어느 누가 달래도 멈추질 않아요. 제가 가서 염불하는 동안에도 계속 우는 겁니다. 염불 소리도 귀에 안 들어오죠. 내가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다했지만, 울음을 그치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되면 위로하는 사람도 머쓱해지죠. 조언을 해 주면 밝어져야 말해 준 사람도 보람이 있는데, 계속 우니까 내가 아주 소용이 없잖아요. 이럴 때 마음이 무겁다면 무겁고 어둡다면 어두운 거죠. 어떻게 해 볼 재간이 없는 상황이었어요.(답답하면 물어라 182)
2.
그런데 그때, 그 집에 와 있던 다섯 살쯤 된 어린아이 하나가 방귀를 뀌었어요. 사람들은 울고 있고 있으니까 조그마한 아이도 눈치가 있어서 계속 참고 있다가 더 참을 수가 없었던지 뿌우우웅 하고 방귀를 뀐 겁니다. 그런데 웃기가 좀 그렇잖아요. 우는 사람이 갑자기 웃을 수도 없었던 거죠. 그래서 참았어요. 얘가 또 다시 뿌우우웅 뿡뿡 하니까 참던 나도 웃고, 울던 그 보살님도 웃어 버렸어요. 모두 웃었지요. 그런데 참다 참다 웃으면 웃음이 잘 안 그치잖아요. 그래서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멈추니까 약간 머쓱해졌어요. 그러자 이 보살님이 또 다시 "아이고, 우리 엄마 죽었지, 엄마...."하고 또 울어요. (183)
3.
- 잠시 깜빡했네요. 내 인생이 끝났다는 걸...
<영화, <패신져스> 오로라의 대사>
이 영화를 보셨나요? 영화에서 오로라는 남자 주인공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잠시 깜빡했네요."하며 다시 현실을 인식하죠. 여기 보살님이 방귀 소리에 웃다가 "아이고, 우리 엄마 죽었지, 엄마..."하고 다시 울듯이 말입니다.
4.
제가 그 때 '아, 방귀가 부처님이구나!'하고 깨달았어요. 내가 온갖 수단을 다해도 그 슬픔을 달랠 수 없었는데, 그 바위 소리로 천 근처럼 무겁던 사람들의 마음이 일순간에 깃털처럼 가벼워지니 말입니다. 부처님이 천백억 화신한다더니 이 때는 방귀로 화신하신 거라 생각했지요. (183)
5.
부처님이 아니면 이런 기적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없잖아요. 그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이나 집착이 없죠. 그 보살님이 웃다가 또 우는 것은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에 우는 게 아니지요. 어머니가 죽었다는 그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고통스러웠던 일을 하나하나 생각하기 때문에 마치 그런 화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어둡고 무거운 것이에요.(184)
T. 또 다른 시점 "방귀 같은 마술"
언젠가 당신은 그 당시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을 피할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저는 제 아내의 재주 덕분에 찾게 된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옆에 멋진 집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저의 집은 만남의 장소로 아주 적합했죠. 밤마다 친구들이 방문해서 함께 당시 상황에 대해 토론했어요. 늘 현관 벨이 울렸어요. "얘기할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현관문에서 해야 됐어요. 이게 혹시 밀고자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우리의 약속된 표현이었습니다. 외적 위험이란 압박 하에 우리는 육감을,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믿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말로 할 수 없는 표식들에 대한 느낌 같은 것을 개발했습니다. 그런 논쟁과 토론의 밤에도 저는 종종 마술을 보였고 손님들을 향해 "신사숙녀 여러분, 여러분에게 현대 살롱 마술의 몇 가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시작했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을 좀 더 나은 세계 속으로 마술을 통해 이끌었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함께 얘기하고 농담하고 마술도 하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몇 시간이나마 일상의 두려움과 압박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지요. 금방이라도 누가 와서 문을 두드리고 잡혀가게 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시절에 함께 웃고 즐기는 것은 말도 못하게 중요했지요. (발명품 216)
1.
*방귀와 마술 시점에서, 슬프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생각을 잠시 잊도록 한 힘은 어디에 있는 걸까.
*또 한편, 슬프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생각은 사실을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본다면, 즉 한 생각을 내려놓는다면 사실은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해서 슬프고, 두려운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답해보면 그 힘은, 한 생각을 내려놓게 하는데 성공하는 것이 아닐까. 방귀와 마술처럼 말이다. 사로잡힌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또 다른 선택지로 나아가게 하는. 이 방면에선 역시 부처님이 최고였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어떻게 하면 한 생각을 내려놓게 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문뜩 떠오른 구절을 은미해본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알로 나는 것, 태로 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화하여 나는 것, 빛이 있는 것, 빛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내가 다 완전한 열반에 들게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수가 없고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되 실로 제도를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이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경>
T.2022
한 생각을 내려놓는 것은, 내가 한 생각에 빠져있음을 알아차려야한다. 이것은 한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을 보는 것임을 알 때, 내려놓는 것에 자유롭다. 조금도 어렵지 않다. 오직 모를 뿐이다.
#아침에눈을떳다면뭐든별일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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