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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無無明 亦無無明盡
<에티카>
정리 1. 그릇된 관념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적극적인 것도 참된 것이 참인 한에 있어서 참된 것의 현재에 의해 제거되지 않는다.
... 따라서 표상은 참된 것이 참인 한에 있어서 참된 것의 현재에 의해 소실하는 것이 아니라, 제2부 정리 17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가 표상하는 사물의 현재의 존재를 배제하는 보다 강력한 다른 표상이 나타남으로써 소실하는 것이다.
<금강경>
凡所有相 皆是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一切有爲法 如夢幻浦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천의 고원>
지구 위에서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불가피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여러 면에서 유익한 동시에 다른 여러 면에서는 유감스런 것이기 때문이다. 지층화가 바로 그것이다. 지층은 층, 띠다. 그것은 질료에 형식을 부여하고, 공명과 잉여성의 체계 속에 강렬도를 가두거나 특이성을 고정시키며, 지구의 신체 위에 크고 작은 분자들을 생산하고 그것들을 몰적 전체로 조직화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층은 포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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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00.0 : 무명이 없음을 알아도 무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실되지 않는 무명을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과 같이 볼 것이며 이슬처럼 번개처럼 한 때임을 볼 것이다. 그래야만 표상에, 감정에 예속, 포획되지 않고 날마다 '있는 그대로'와 일치하므로써 자유롭게 되기 때문일 것인데, 안다는 것과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달라서 늘 깨어있는 신체를, 기관 없는 신체를 이루는 게 너무나 힘이 들고 실패 뿐이다. 진정 원하는 것은 예속이 없는 곳이 아니라[왜냐면 예속은 불가피한 것이며 또 유익하면서도 유감스런 것이기 때문에] 예속 속에서 예속 되지 않고 포획 속에서 포획되지 않는 그런 자유의 신체가 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인연을, 내공을 쌓아야하나. 감정에 예속되어 있는 나를 보고 있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니 안다는 것과 된다는 것의 차이를 너무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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