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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몸의 모양[身相]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모양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의 모양이란 몸의 모양이 아니기[非相]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모양[諸相]이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을[非相]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각주:1]

 

T1000.0 : "여래란 삶의 열린 모습"이다. 기관 없는 신체는, 여래가 아니겠는가? 여래를 본다는 것, 기관 없는 신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만약 모든 기관이 기관 아님을 본다면 기관 없는 신체를 보리라.'

 

인식의 결과는 항상 '나와 나의 소유가 상속'되는 것이므로 인식을 '자기 한정'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기 한정에는 '개체 상속이 자증분自證分의 자기 한정'과, '시대와 역사의 한정인 증자증분證自證分의 사회 한정'이 어울려 있습니다. '자기 한정과 사회 한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여래'입니다. 이 때문에 "누구를 제도해서 복덕을 구하려고 하거나 여래를 한정된 몸으로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몸이라고 말하지만 형색에 구애되는 생각을 가지고 아는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즉비卽非라는 말은 "A는 곧 A가 아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즉각 열려 있음" 곧 '깨어 있음'을 뜻합니다. 깨어 있게 되면 마음의 자기 한정이 일어나더라도 순간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자기를 한정짓지 않습니다. 곧 자기 한정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사라지면 사라진 대로,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즉비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서 '마음의 열림'입니다. 지금 '몸의 모양'에 대해 말을 듣는 순간, 마음 가운데 '몸의 모양'이라는 한계를 지으면 즉비가 아닙니다. 말을 듣는 순간 그 말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즉비가 됩니다.[각주:2]

 

T1000.0 : 불교에서 말하는 자증분[자기 한정]과 증자증분[사회 한정]은 즉, 개인의 별업別業과 사회의 공업共業이 [<천의 고원>에서 말하는] "내용과 표현의 이중 분절"로써 한 개인으로, 한 주체로 지층화하고 자기 한정하여 그것에[業] 예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금강경>의 인용한 대목을 읽으면서 '즉비신상卽非身相', 신상 즉 몸의 모양이 몸의 모양이 곧 아님[卽非]을 보는 데서 기관 없는 신체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것 하나와,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사라지면 사라진 대로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놔두는 것이 즉비'라고 했는데, <천의 고원>에서 입을 입-기계라 부를 때는 즉비, 입이 즉 입[입-기관] 아님을 보기 때문에 기계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기계라는 말에 공성空性이 내포되어 있다는 둘이 연상되었다. 기계는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사라지면 사라진 대로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놔두는 것'이므로 즉비. 

 

 

  1. <금강경> 5.如里實見分 [본문으로]
  2. 정화스님 풀어씀, <금강경> p10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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