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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알아차리는 법계 인연이 스스로 시공간을 만들고 있으므로 앎과 이룸이 찰나의 순간에 온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연의 무상한 변화가 그 자체로 앎이 되고 이룸이 되면서 동시에 시간을 만들어 기억 속에 남은 앎과 이룸의 현재를 해체하고, 다시 다른 앎과 이룸으로 새로운 현재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앎과 이룸 그 자체에 온전히 깨어 있는 한 순간이 이룸 없는 이룸, 곧 머물지 않는 이룸으로 단박에 닦는 것이 되면 , 깨달음 없는 개달음, 곧 이미지로 그릴 수 없는 깨달음으로 단박에 깨닫는 것이 됩니다. 법계의 실상에 계합하는 순간만이 온전히 법계의 앎과 이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합하지 못한 앎과 이룸이라면 온전한 앎과 이룸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점차로 알고 점차로 이룬다는 뜻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각주:1] 

 

T1000.0 : 나에게는 법계의 실상에 계합하는 순간이 자연과 일치되는 삶으로 이해되는데, 계합이란 자연의 무상성에 그대로 일치하는 삶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점차 무엇을 이루는 삶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단박에 그렇게 되는 삶이다.

 

 

  1. 정화스님 풀어씀, <육조단경> p19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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