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변화의 순간순간에 깨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앎 그 자체의 속성, 곧 머묾 없는 변화가 앎이 된다는 것을 알아 집착하여 갖고 있는 허상을 내려놓고 번뇌를 여의어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존재의 실상이 이웃 항들과 공감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개체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 스스로를 해체하면서 다른 현상이 되는 것이 이웃 항들과의 공감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보고 안다는 것이지요. 앎의 항상성과 개체의 무상성이 어울려서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는 것이 무상으로 현상을 나타내고 앎으로 기억을 남기므로 무상성과 항상성이 담보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변화에도 머물 수 없고 항상성에도 머물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앎의 기억에서 보면 머물 수 있는 것 같지만 무상이 앎이 되니 앎에만 머물 수 없고, 앎이 없다면 무상에 대한 항상한 이해가 있을 수 없기에 깨달음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는 앎으로 머묾 없는 무상을 보고 어느 이미지에도 걸림이 없어야 합니다. 이미지에 매인다면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있는 것과 같아 번뇌가 되고, 가질 수 없기에 갖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번뇌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1
<금강경 사구게>에서, 應無所住 以生其心, 마땅히 머뭄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 것이 중도이며
2. <금강경 사구게>에서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인연 따라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마치 꿈,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갯불과 같다고 보아야한다는 것처럼 모든 인연이 空함을 알고, "머묾 없는 변화가 앎이 된다는 것을 알아 집착하여 갖고 있는 허상을 내려놓고[凡所有相 皆是虛妄] 번뇌를 여의어[若見諸相非相]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삶[卽見如來]을" 사는 것이 깨달음의 삶이다.
- 정화스님, <육조단경> p194 [본문으로]
'혜능의 <육조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정혜 삼학 (0) | 2012.10.19 |
---|---|
번뇌가 깨달음 (0) | 2012.10.19 |
과정이 곧 결과 (0) | 2012.10.19 |
자연과 일치되는 삶 (0) | 2012.10.19 |
방편 (0) | 2012.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