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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모델은 커뮤니케이션이 전송자로부터 수신자로의 단순한 정보 전달로 파악돨 수 있음을 분명히 하는군요.

또 있습니다. 이러한 모델의 틀 안에서는 정보라는 것이 물상화됩니다. 정보는 관을 통해 넘겨질 수 있는 물질이나 상품으로 나타납니다. 일찍이 이런 개념 틀이 출현했을 때 저는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40년대 말에 클로드 섀넌과 워런 위버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수학적 이론>이라는 아주 중요한 책자를 냈는데 그 책자에서 그들은 (원거라 통신기술의 모델에서 비롯되는) 정보의 믿을 만하고 정확한 전달 (전송자로부터 수신자에 이르는)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들의 천재적이고도 환상적인 사고는 커뮤니케이션의 프로세스에 대한 일련의 왜곡된 관념을 형성했습니다. 이미 그 당시에 저는 그들에게서 정보라 불리는 것이 원래는 하나의 신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따라서 신호로 부호화된 정보를 흐름이 있는 통로를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다루는 소위 정보이론도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신호이론이라고 이의를 제기했었습니다.

인식하는 자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운 당신의 관점에서 봉 때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입니까? 정보는 무엇입니까? 정보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생겨납니까?

정보는 신호를 가지고서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납니다. 제 생각에 정보란 지각하는 의식 밖에 존재하는 사용대상이 아닙니다. 책, 신문,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 교통표지판 등은 그러니까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다만 잠재적인 정보의 운반자일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분입니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역경>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있는 기묘한 닭발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입니다. 이는 특정한 교통표지판을 보거나 붉은 신호등을 보더라도 우리가 운전면허증을 딴 사람이라야 우리에게 그 신호들이 브레이크를 밟고, 중립기어를 놓고 차를 세우게 만드는 정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신호를 정보로 바꾸는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 속에서 진행되는 연산작용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은 그렇게 보면 하나의 개인적인 의미구성이라고 기술될 수 있겠네요.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의미구성은 결코 개인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빨간불에서는 대부분의 차들이 서 있잖습니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로 하여금  안정적인 고유행동을 발전시키고, 신호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신호를 특정행동방식으로 이끄는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빨간불이 오면 브레이크를 밟도록 해 주는) 하나의 문화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정보를 받는다'가 아니라 '형식 속으로 넣어진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사람 자신의 내적 형식입니다. (발명품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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