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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자기가 하는 모든 일, 다시 말해 무엇을 보거나 맛보거나 고르거나 물리치거나 말하거나 하는 모두가 타인과 공존하면서 (우리가 기술한 기제를 통해) 한 세계를 산출하는 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이런 현상들과 똑같은 성질의 것으로 보도록 독자들을 유혹햇다면, 우리는 이 책을 쓰면서 세운 첫째 목표를 이룬 셈이다.
이런 고찰 방식은 당연히 우리를 순환적 상황 속으로 밀어넣는다. 아마 이것은 예셔의 <그림 그리는 손>처럼
![](https://blog.kakaocdn.net/dn/ckAAjw/btqQwmFkSd2/mWVeSni8ZyLxAbcDbYd8T0/img.jpg)
어지러움을 불러이르킬 것이다. 이것이 어지러운 까닭은 이전처럼 확실한 준거를 바탕으로 기술할 수도, 그 기술이 타당함을 주장하고 방어할 수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다. 만약 관찰자인 우리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세계가 있고, 우리가 신경계에 바탕을 둔 인식활동을 통해 객관적 세계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신경계가 구조적 역동성을 가지고 어떻게 작업하며 또 독립한 세계의 표상을 어떻게 산출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관찰자인 우리로부터 독립한 세계를 전제하지 않으면 법칙이란 없으므로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가능함을 인정해야만 할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우리의 경험이, 곧 삶의 실천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어떻게 접속되어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 가득 찬 듯한 규칙성들은 모두 우리가 겪어온 생물학적 사회적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무아, 즉 실체는 없는데 작용은 있는]
1.
두 극단, 다시 말해 표상주의(객관주의)와 유아론(관념론)에 빠지지 않도록 또다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이 책의 한 목표는 바로 그 중간 길 찾기였다. 곧 우리의 기술과 인지적 가정이 확실한 것처럼 보이게 할 어떤 준거가 우리로부터 독립해 있다고 전제하지 않은 채, 우리가 늘 경험하는 세계의 규칙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 자신을 기술자이자 관찰자로서 산출하는 전체 기제가 말해주듯이 타인과 공존하면서 산출하는 우리의 세계야말로 인간 경험에 (그것을 찬찬히 살펴볼 때) 아주 전형적인 규칙성과 가변성의 혼합, 고정된 것과 일시적인 것의 뒤섞임을 언제나 드러낼 것이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순환고리인 우리의 인지적 영역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만약 두뇌와 언어와 발생과정의 본성을, 곧 자연의 본성을 신이 "그렇게 되어라!'하고 명령하듯 바꾸고 말겠다면 문제는 다르다.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때마다 우리는 역사의 지배를 받는 순환고리 속으로 얽혀 들어간다. 효과적인 행위는 효과적인 행위를 낳는다. 이것은 우리의 과정적 존재를 특징짓는 인지적 순환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자율적 체계로서 존재하는 방식의 표현이다.
3.
우리가 산출한 세계는 끊임없는 재귀과정 속에서 자신의 기원을 감춘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사는 방식일 뿐이다. 세상의 이런저런 규칙성들에 (예컨대 우리의 가치나 취향 또는 주변 사물의 색깔이나 냄새 따위에) 우리가 익숙해지던 과정 중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지금 다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유기체의 역동성이 작업적으로 안정되는 방식에 이런 역동성의 발생과정이 구현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생물학적 기제의 원리다. 생명활동은 자신의 기원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기껏해야 세계를 산출하는 기제를 밝힐 설명을 언어로 내놓는 일뿐이다. 우리는 존재함과 동시에 인지적 '맹점'을 산출한다. 이것을 없애려면 또 다른 영역에서 또 다른 맹점을 산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어떤 상호작용 때문에 정상상태가 깨질 때, 이를테면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 갑자기 놓이게 될 때 그리고 그것에 관해 성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관계들을 산출하면서 "전에는 그것들을 깨닫지 못했다"거나 "당연한"것으로 보았다고 설명한다.
(앎의 나무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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