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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과학의 발전과정에서 강력한 진리개념 혹은 소박한 진리개념이 매우 생산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추동 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볼 때 진리라는 모티브는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도 다른 사람에게 테러를 가하려는 광신자들의 단순한 도구에만 머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특정한 이념을 멋진 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사람(인식하는 사람)의 개인적 신념에 대해서 말하고 있군요. 그렇지만 일단 이 사람도 내가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순간 위험한 동물이 됩니다. 또 진리에 점차적으로 혹은 점근적으로 다가간다는 주장 역시나 제게는 좋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역시 어디에 최종적인 목표가 있는지에 대한 앎이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진리를 지시하는 일)을 믿음(믿음이라는 생각)으로 대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어원을 분석해 보면 진리의 영어 단어인 Truth는 믿음을 뜻하는 독일어Treu로 되돌아가니까요. 진리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믿음으로 파악하게 되면 외적인 준거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상대가 말하는 것을 상호 신뢰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일 수 있지요. 이때는 누가 옳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상대를 신뢰하는가, 상대를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요. 누가 내게 방울뱀이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한다고 말하면 나는 방울뱀이 진짜 그렇게 하는지를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내가 그를 신뢰하고 믿으면 완전히 다른 관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발명품 51)
2.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인 의미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근본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기와 알기를 혼동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정말 인간으로서 가질 수 없는 능력들을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우리의 문화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을 구분하거나, 또는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마치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 둘이 별개인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이 독립적인 것으로 가정된 두 개의 실체들 사이의 관계를 훨씬 더 엄밀하게 기술하애 하는 과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나의 주장은 그와는 반대로 이러한 구분이 유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관찰자들이 어느 정도로 그들이 수행하는 관찰들의 일부인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함으로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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