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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덧붙여 만약 여러분의 딸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와서 울고불고할 때는 그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정확하게 처리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딸에게는 꼭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런 일은 별것아니다. 그 애들이 장난으로 그런 거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마라."
이렇게 말해 주어야 딸에게 상처가 안 됩니다. 큰 일이 난 것처럼 자꾸 떠들수록 딸은 자기가 무슨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처가 자꾸 커지기만 할 뿐입니다. 아이에게 해줄 얘기와 그런 잘못된 행위를 근절시키는 것을 분리시켜서 객관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114)
2.
당신이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다가 별안간, 한 아이가 파도 때문에 바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갑자기 발견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때 당신이 물속으로 달려 들어가 아이가 물에 빠져 죽지 않도록 구해낸다면, 당신은 사랑의 발로로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아이를 불러서 그 아이를 꾸짖는다면, 그것은 사랑의 활동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아이가 느꼈을 두려움에 주목하지 않고 오직 당신 자신의 불안에 따라 행동한 것입니다. 그 순간 당신의 활동들을 지배한 감정은 당신 자신의 두려움입니다. 그 아이 나름의 적당한 지각에 기초해 취할 수 있는 행위는, 그 아이의 공포를 줄여주고 해변을 안전하게 돌아다니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해 그 아이를 달래주는 일일 것입니다.(함으로 320)
3.
어느 겨울날 내 귀여운 다섯 살짜리 손자가 나를 방문하러 왔습니다. 그는 눈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두꺼운 안경을 써야 했지요. 그날 그는 또한 보온을 위해 옷을 여러 겹 겨입고 있었습니다. 정원에서 놀다가 그만 수영장의 깊은 곳으로 미끄러져 빠지고 말았습니다. 물속으로 가라앉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들에 공기가 많이 차 있었기 때문에 다시 표면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수영장 가장자리를 부여잡고 도와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수영장 가장자리로 달려가서 그를 끌어내고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축하한다, 얘야. 네가 너 스스로를 구했구나!"
선생님은 그 상황을 재해석한 거였군요.
그러나 자의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은 먹혀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의심할 바 없이, 그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했던 것입니다. 여전히 무서움에 벌벌 떨며 혼날까봐 두려워하면서 그는 나에게 그것은 사고였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고였지. 하지만 어쨌든 너는 네 자신을 구했단다. 나는 단지 네가 수영장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것뿐이란다." 그는 흐느끼면서 화장실이 급하다고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오, 어서 쉬하렴. 가서 수건을 가져오마. 따뜻한 오줌은 환상적인 느낌일 걸!" 자기 누이가 저녁에 나를 보러 왔을 때 손자 녀석은 그녀에게 쪼르르 달려가서는, "수영장에 빠졌었는데 내가 나를 구했어!" 그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고, 물에 대해
어떠한 두려움도 드러내지 않았으며, 자기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원한다면 당신은 이 체험을 치료법적 간섭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이 나쁜 어린 소년이 있었는데, 실수로 수영장에 빠졌으나 어떻게 해서 스스로를 구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 자신의 공포나 분노에 따라 반응하지 않고 그 아이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당신의 지각과 긍정적인 평가에 따라 반응할 것입니다.(196)
4.
부처님이 공양을 드시고 배탈이 났다는 말을 전해들은 춘다는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자기 딴에는 잘한다고 했는데 부처님이 많이 아프시고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들려오니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물었습니다.
'아난다여, 지금 춘다는 어쩌고 있느냐?
춘다는 매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어떠하냐?"
'대중들은 춘다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춘다를 불러오게
해서 제자들과 함께 않게 하고는 물었습니다.
"아난다여, 이 세상에서 공덕이 큰 공양이 무엇이겠느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그렇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중에서도 가장 공덕이 큰 공양이 무엇이겠느냐?"
아난다가 대답이 없자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두 가지가 있느니라. 하나는 부처가 도를 이루기 직전에 올린 공양이고, 또 하나는 부처가 열반에 들기 전에 올린 마지막 공양이다."
부처님이 도를 이루기 직전에 올린 공양은 수자타의 공양입니다. 수자타의 공양이 위대한 공양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굶주림에서 살려낸 수자타의 공양의 공덕과 부처님을 병이 들게 한 춘다의 공양의 공덕이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세속적으로 말한다면, 수자타의 공양은 부처님을 살려낸 공양이고 춘다의 공양은 부처님을 돌아가시게 한 공양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드신 마지막 공양이 춘다의 공양이니 춘다는 한량없는 공덕을 지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춘다는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고, 거기에 모인 제자들도 더 이상 춘다를 비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독성이 있는 음식을 먹고 죽지 않았다든지, 그 음식에 독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먹지 않았다든지 할 때 그 사람이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기적을 행했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과거 역사 속에서도 많았고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춘다가 올린 음식을 드시고 발병하였으면서도 춘다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춘다의 공양을 칭송하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기적이며 부저님의 한없는 위신력입니다.
(날마다 새날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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