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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유발하는 행위가 화를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화를 내게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나 자신을 화나게 할 순 없다. 화나게 유발할 수 있을 뿐, 화를 내는 것은 내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난 것은 화를 내는 것이 상대방 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결정은 내가 하고 책임은 떠넘기는 꼴이 된다. 화는 내가 내놓고 책임은 너 때문[남 탓]. 구조적 결정론의 성찰은 안을 드려다보게 한다. 유발은 유발일 뿐 결정은 내가 하므로 내 안의 체계에 눈돌리게 한다.
1.
복통 때문에 의사를 만난다고 가정해 보세요. 당신은 적절하게 진찰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맹장이 제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당신은 '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인 것처럼 다루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수술 전에 느낀 고통과 수술 이후에 당신이 체험한 안도감은 둘 다 당신의 구조에 의해, 그리고 의사가 그것에 가한 수정[변경]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어떤 분자체계에 충격을 가하는 외적 작용체가 일정한 효과들을 유발하지만 그것들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충격도 단지 어떤 구조적인 동학을 유발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결과들은 체계 자체의 구조에 의해 특징지어지고 결정됩니다. (함으로 112)
3.
사실상, 상이한 서술들을 낳게 마련인 두 개의 서로 다른 관찰 시각들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이 두 생각들이 동등하게 타당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신경체계가 개방된 체계라는 전제를 가지고 신경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혀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오도된 접근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관찰자들은 그것의 작동 방식이 그것의 투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믿을 것입니다. 그들이 환경 속의 외적 자극들로 규정하는 것은 막대한 중요성을 획득할 것이고, 그로인해 그 체계의 내적 동학을 간과하게 될 것이며, 자신들의 서술 영역과 그 체계의 내적 동학을 간과하게 될 것이며, 자신들의 서술영역과 그 체계의 내적 동학의 영역을 혼동하게 될 것입니다. 영역들을 이렇게 혼동하는 것은 신경체계의 작동 방식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해 줄 수 없습니다. [스피노자가 '사람들은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 것과 같은 울림]
하지만 우리가 만일 신경체계를 폐쇄적인 네트워크로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그것의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매개체와 완전히 일치를 이루고 있는 유기체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변화들이 어떻게 그것의 신경체계에서의 구조적 변화들을 낳고, 궁극적으로 그것의 행위상의 변화들을 낳는지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정보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그 대신 유기체를 그것이 놓인 환경 속에서 관찰할 때 신경체계의 활동들, 유기체의 몸체와 그 외적 상황들 사이의 이상한 구조적 연동이 세부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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