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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를 나무로 체험하는 것은 폐쇄적 구조들의 상호작용으로, 나무의 실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는 나무와 나와의 연기적 상호작용에 의해 나무로 인식되는데, 나무는 그 이름이 나무일 뿐이다. 나무라는 인식의 현상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나무일 뿐. 그 이름만이 독립되어 있으며 이로인해 나무를 객체나 대상으로 여기고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나무는 나무라고 이름하는 체험이며, 나무가 외따로 존재할 수 없다. 저기 있는 나무는 나무를 관찰하는 관찰자를 요구한다. 연기법은 원천적으로 관찰자에 의존해 있다. 체험의 근거가 우리 신체이기 때문이다.
2.
이것은 나무로, 저것은 꽃으로, 또 그것은 강아지로 인식되나 그 이름이 나무, 꽃, 강아지이지 그것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출렁이는 인식의 바다에서, 생겨나는 것도 소멸하는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으며,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다. 다만 이름 뿐이다.
조건이 바뀌면 나무로 인식되었던 것이 꽃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식의 체험이 있을뿐 외부의 실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체험에 준거한 인식의 구분[작용]이 있을 뿐 실체는 따로 없다.
[예를 들어 시신경섬유를 식초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색이 있는 빛을 지각하게 됩니다. 혹은 미각을 느끼는 혀의 돌기를 몇 볼트의 전극봉으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식초 맛을 느끼게 됩니다. 생리학 교재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관찰을 통해 볼 때 외부세계가 내부세계에 베껴진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고도 말이 되지 않는 얘기라 할 것입니다. 식초가 색의 흔적이 되고 전기가 식초가 되는 겁니다! (발명품 22)
관찰자가 외적이라고 서술하는 대상에 반사된 빛이 망막에 닿으면, 망막 자체의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시작됩니다.(이는 빛의 원천의 구조 안에서, 또는 세계의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아닙니다.)
외부 세계는 신경체계 그 자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바의 유기체의 신경체계 안에 이러한 변화들을 유발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외부 세계가 자기 자신을 근본적이고, 참된 형태로 신경체계에 전달할 수 있는 가능한 길이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함으로 97)
그래요.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자극을 받은 우리의 감각이 우리 앞에 펼쳐내 보이는 것뿐입니다. 인식의 입구에서 (인식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소위 세계의 심부름꾼들은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은) 그들 자신의 특별한 속성들을 없애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오늘날은 자극의 무차별적 부호화가 얘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극 혹은 교란이 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이게 신경세포가 알려주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교란의 원인은 불분명하고 그 원인은 특수하게 부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발명품 22)]
3.
소유란 무엇인가. 소유는 지속적인 체험이며 체험은 늘 변한다. 소유물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으며 나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가 있다. 따로 소유물이 독립된 대상으로 여겨 집착하는 것은 무지, 착각이며, 또 나의 어떤 한 체험에 집착하는 것은 무상한 차원에서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집착은 불합리하다. 똑같은 체험이 불가능하다면 다가오는 새로움의 체험을 긍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결론은 끝이 아니라 다시 하나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떤 궁극적인 결말로 나아가기 보다는 또 하나의 시작이 될 겁니다. 시간은 항상 함축적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금언을 보세요. '만물은 유전한다.' 그리고 덧붙여집니다. '인간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제가 이것을 바꾸어 표현한다면, '인간은 같은 얼굴을 두 번 볼 수 없다'가 될 겁니다. 한 번 본 얼굴을 우리는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처럼 얼굴도 영원히 지나가 버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테오발트 아저씨의 얼굴을 두 번 바라 볼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저씨 얼굴은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는 말(언어)이니까요. 정태적인 상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작과 끝의 궁극점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전개되었던 공중제비돌기는 배워져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공중제비돌기를 도는 순간에 즐길 수 있습니다. (발명품이다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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