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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더 설명적인 사례는 잠시 접어 두고, '전통적으로 자극과 투입이라 불리고 살아 있는 존재의 행위를 통제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제 분명하게 필요해진 새롱누 개념들 및 새로운 종류의 언어라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용어들은, 그것들이 비록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에서 아직도 광범하게 유통되고 있다 할지라도, 더 이상 사용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분명히, 직접적이고 단일원인적인 영향력을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이라는 잘못된 개념은 다음과 같은 대안적인 생각에 의해 바로잡혀야 합니다'살아 있는 존재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것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외적 작용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논평하는 관찰자의 시각에서, 살아 있는 존재가 속해 있는 섭동들(perturpations)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관찰자는, 그가 보기에, 체계에 충격을 가하고 그 안에서 (구조의 파괴에는 이르지 않고 그것의 조직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는) 구조적 변화들을 유발하는 어떤 실체(entity)를 지각합니다. 이 마주침의 형태를 나는 섭동이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그 체계가 자신의 정체성[동일성]을 잃고 붕괴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파괴적인 변화가 발생합니다. 누군가 나를 밀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를 섭동시키지 마!' 하지만 망치로 내 머리를 친다면 내 구조의 잠재적 변화는 위험해지고 나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올바른 표현은 다음이 될 것입니다. '나를 파괴하지 마!' (함으로 114)

마뚜라나 투입 개념은 직접적인 영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외부 세계로부터 어떤 것이 체계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무엇이 발생하고 나타나는지 결정한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결코 옹호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지시명령젹 상호작용이라는 그릇된 전제에 의존하고 모든 체계들의 '구조적 결정론'에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섭동이 나타날 때 체계는 그 체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구조적 변화를 유발하는 실체와 마주칩니다. 섭동 개념은 구조적 결정론의 생각과 일치를 이룹니다.(118)

 

마뚜라나 내가 보기에 이 개념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하는 요소들입니다. '폐쇄적이고, 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들인 우리가 조화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체계들이 구조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의 외적작용체는 체계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변화는 섭동하는 작용체에 의해 유발되지만 섭동 체계의 구조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외적 충격이 체계의 조직을 파괴함으로써 체계를 분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체계들이-구조적 변화에 인하여-접촉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체계들은 어떤 응집 형태를 보존함으로써 계속해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호작용의 최종 형태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138)

T.

섭동을 포기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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