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공의 균형을 맞추려면 '고정된 실체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과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불교의 위대한 현자들이 공의 원리를 가르칠 때 '현상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현상은 연기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고, 즉 자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공을 이해하면 양극단[상주론과 단멸론]을 모두 피할 수 있습니다. 공을 깨달음으로써 현상이 고정된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극단을 피할 수 있고, 현상이 연기에 따라 일어나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현상의 작용을 부인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
1. 나가르주나는 모든 존재나 현상은 연기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허무주의와는 다릅니다. 나가르주나는 '공하다'는 것이 '현상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사실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마음 75) 2.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단과 목적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이 아니라, 생산, 생산성, 능력에 기초에서, 즉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 (스피노자의 철학)
무지로 인해 이렇게 왜곡된 모습을 실제라고 착각하게 되면 탐욕과 성냄, 그리고 다른 많은 해로운 '마음'들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해로운 마음은 다시 탐욕과 성냄에 바탕을 둔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런 행동들이 마음속에 업을 형성하면서 윤회를 되풀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길들이기 47) - 무지의 전도몽상으로인해, 해로운 마음이 행동으로 업을 형성하면서, 윤회. -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즉 해탈은 이 순환을 깨달아, 보이는 대로의 현상을 이해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으로서 예컨대 환상처럼 보기 등을 통해 이뤄낼 수 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이 있는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1. 우리는 사물의 겉모습에 현혹되어 이렇게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면 무엇이 진실이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무지로 인한 우리의 왜곡된 생각은 커져만 갑니다. 예를 들어, 예쁜 물건을 보거나 멋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단지 그것이 있다는 것이 인식할 뿐입니다. 이때의 마음은 중립적입니다. 그러나 그 대상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그것이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대상이 보이는 모습대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 대상에 집착하게 되면 대상에 대한 '탐욕'이 생겨나거나 반대로 그 대상을 손에 넣는 데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한 '성냄'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자아가 개입되면 대상과 자신과의 관계를 강조하게 되면서 그 대상이 '나..
예쁜 것과 예쁜 것에 집착하는 것의 차이. 연기적 관점에서 우선, 예쁨은 고정된 실체로서의 현상이 아니다. 예쁨은 특정한 조건 속에서 형성된다. 예쁜 꽃이 시들해 지는 것을 보면 또다른 특정한 조건 속에 들어간 것이다. 또 한국에서 예쁜 여자가 아프리카에서는 그렇지 않음은 특정한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쁨은 무상한 것이다. 특정한 조건들이 변하면 예쁨은 사라진다. 흔히 불교의 책들을 보면 욕정을 다스리는데 예쁨의 무상함을 강조해 부정관같은 명상을 통해 욕정을 가라앉히는 수행을 한다. 그러나 이것으론 모자르다. 왜냐 특정한 조건을 벗어난 무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 속에서 작동하는 공을 여실히 보아야 욕정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예쁨 역시 색즉시공. 예쁨은 그자체로 공하다...
공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공을 완전히 이해하면 해로운 마음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공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가 고삐에 매여 끌려가듯이 해로운 마음의 굴레에 얽매인 채 생을 거듭하며 윤회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때로는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강조하고, 때로는 그것에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강조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1. 공은 색 자체의 본질적 특성. 그렇게 번갈아 생각하면 연기와 공 모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 공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상의 본질임을 알게 됩니다, 에서는 이를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합니다. 색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 공입니다. 공은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처럼 여분의 것이 아니라 색 자체..
1. 존재와 현상이 이처럼 변한다는 사실[무상]은 그들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고정된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음[공]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렇게 고정된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원인과 결과가 가능해지고 연기하여 일어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인과] 1-2.어떤 현상이 스스로 존재한다면 다른 요인들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요인들에 의존하지 않으면 연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함께 기뻐해 주는 좋은 원인을 지음으로써 행복이라는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질투하는 나쁜 원인을 짓지 않음으로써 고통이라는 나쁜 과보를 피할 수 있습니다. 상호보완적인 깨달음 1-3 공이 연기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공의 개념은 접어 두어도 좋을 것입니..
예를 들어 탁자는 존재하기 위해 그것의 부분들의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부분들을 탁자를 구성하는 기초라고 부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탁자를 찾으려면 다리나 상판 등과 같은 기초 안에서 탁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부분들 중 어느 것도 탁자가 아닙니다. 탁자가 아닌 이것들이 생각에 의존하여 탁자가 되는 것입니다. 탁자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탁자는 의존적으로 생겨나거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1.탁자는 어떤 '원인'에 의존합니다. 2.탁자는 그것의 '부분'들에 의존합니다. 3.탁자는 '생각'에 의존합니다. 이것이 연기의 세가지 방식입니다. 물론 이 중에서 좀 더 중요한 요소는 대상을 규정 짓는 '생각'입니다. 생각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연기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