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만족이란, 인[원인]연[조건]과[결과]보[보상]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면 욕심은 인연과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욕심은 만족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자초한다. 욕심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법칙을 벗어나 요행을 바라는 터무니 없는 마음이기에 이뤄질 수 없고 이뤄질 수 없으니 괴롭다. 욕심을 버려야할 이유다. 인연과보에 만족하는 자기만족은 잃을 것도 없고 따로 얻을 것도 없기에 작은 만족에서 큰 만족으로 나아가든 큰 만족에서 작은 만족으로 나아가든 늘 만족한다. 인연과보를 받아들이는 삶이란 늘 만족하는 삶이고 불행해질 수 없는 삶이고, 날마다 좋은 날이다. [그런데 삶은 본래 인연과보를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즉 이미 완전한데 단지 모를 뿐이다.]
내 생각에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관계는 이렇다. 둘의 구분을 대략 말하면 전자에선 평행하는 두 직선은 서로 만나지 않으나 후자에선 평행하는 직선이 무한이 뻗다보면 만난다. 이는 지구의 평행하는 경도가 북극과 남극에서 하나로 만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쉽다. 이를테면 유클리드 기하학은 매끄러운 공간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홈패인 공간과 대비되는데, 창공의 비행기는 매끄러운 공간을 날고 있지만 그 비행기의 그림자는 홈패인 공간인 땅에 드리워져 있어 그 모양이 울퉁불퉁하다. 전자와 후자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공존한다. 이러한 관계는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몸과 마음도 평행하는 두 직선처럼 떨어져 있으나 서로가 하나임을 알아야한다.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공존처럼..
살다보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들과 부딪치게 된다. 남들이 뭐라하든 나의 길을 꾸준히 가면되고 나또한 남의 인생에 간섭할 필요가 없다. 나의 생각이 맞더라도 그것은 나의 인생, 나의 인연 속에서 맞는 것이지 내 방식이 맞더라도 그의 인생, 그의 인연속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생각에 대해 무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생각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다름을 이해함으로써 이제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 있다. 거부하는 온당한 이유는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간섭하지 않는 이유이다.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은 집착에도 무관심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이다.
니체는, 자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생애를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금욕적인 덕목들-겸손, 검소, 순수-을 독점하여, 그것들을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실제로는 거의 금욕적이지 않은 목적들에 사용한다. 철학자는 그것들을 자신의 독특함의 표현으로 삼는다. 철학자에게서 그것들은 도덕적 목적들도, 또 다른 삶을 위한 종교적 수단들도 아니며, 오히려 철학 그 자체의 이다. 철학자에게는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 검소, 순수는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단과 ..
생각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고 서로 다를 뿐이니 내 생각대로 안됨을 괴로워하지 말고 다른 생각과 부딪치면 인연따라 휘돌아가는게 순리. 휘돌아가는 것도 방법이니, 흐르는 물처럼. 생각에는 옳고 그른 것이 있다해도 서로 다를 뿐. 때를 만나고 때를 만나지 못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 옳은 것이 영영 옳을 수 없고 그른 것이 영영 그를 수 없다. 생각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고 서로 다를 뿐. 때를 만나지 못한 생각이거든 때를 기다리거나 생각을 바꾸면 된다. 다른 생각과 부딪치면 인연따라 휘돌아가는게 순리. 휘돌아가는 것도 방법이니, 흐르는 물처럼.
접착보다 천배 만배 강한 것이 집착이다. 집착은 거의 분리불가능하다. 그래서 에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꿈처럼, 환영처럼, 물거품처럼, 그림자처럼 보라고 하였다. 이렇게하여 공덕이 쌓이면 초강력 접착제도 결국엔 말라버리듯 어느새 집착도 끊어지는 날이 온다. '집착을 내려놓으라'하지만 그것은 접착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내려놓아도 다시 달라붙으니, '아, 내가 또 집착을 부리는구나'하고 얼른 알아차려서 이것이 다 꿈에 사로잡혀, 업식에 사로잡혀 꿈꾸는 것이니 내가 꿈꾸고 있구나하고 깨어있으면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