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신경계란 활동적 구성요소들의 그물체이며 이 구성요소들 사이의 흥분관계에 생기는 변화는 언제나 이것들 사이에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온다. 그 가운데 몇몇 관계들을 끊임없는 섭동 속에서 (그 관계들 자체의 역동성과 유기체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변함없이 유지하는 일이 바로 신경계가 하는 일이다. 따라서 신경계는 구성요소들의 흥분관계가 맞물려 변화하는 닫힌 그물체로서 작업한다. 팔 한 곳에 아주 센 압력을 느낄 때 우리는 관찰자로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아, 이 근육이 오그라들어서 내가 팔을 끌어당기게 되는 것이구나!" 하지만 그때 작업하는 신경계 자체의 관점에서 볼 때 일어나는 일이란 (잠수함 속 조종사의 경우와 비슷하게) 다음과 같을 뿐이다. 곧 감각요소와 운동요소 사이의 특정 관계가 잠..
어떻게 하면 시비하는 습관을 버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진리 개념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1. 저도 모르지요. 그저 다른 말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실재라고 생각하는) 놀이를 같이 하도록 다른 사람을 초대하려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바람은 내 말을 (나의 언어를) 잘 구사해서 정치가 됐건, 과학, 시 혹은 무엇이 됐건 모든 대화 속에 나의 윤리가 내재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어떤 문장을 말하더라도 늘 점잖은 사람으로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려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재판관이나 경찰과 같은 지위로 끌어 올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각자의 여지를 부여하는 그런 점잖은 사람 말입니다. 이게 제가 궁긍적으로 올바른 언어와 설명..
1. 누가 옳은가, 첫 번째 유아론자인가 아니면 두 번째 유아론자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는군요. 이게 도약 지점입니다. 저는 그런 사실을 계속 설명하기 위하여 소위 상대성 원리를 말하고자 합니다.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A에게도 B에게도 옳은 하나의 가설은 그것이 A와 B에게 한꺼번에 타당할 경우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가령 태양이 우주의 중심인가 아니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가라는 물음을 생각해봅시다. 금성에도 지구에도 자신의 행성이 중심에 있다는 가설을 다투는 존재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지구인과 금성인이 만나게 되는 순간 그들은 다투고 전쟁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누가 옳은가요? 누가 진리의 소유자입니까? 이 다툼을 조정하기 위해서 상대성원리를 사용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지구인에게도 ..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잘못을 보지 말라. 만약 남의 잘못을 보면 자기의 허물이 오히려 그것이니 남만 그르고 나는 그르지 않다면 그르다는 그것이 허물이리라. 다만 그르게 여기는 마음을 없애고 번외의 뿌리를 뽑아 없애어 밉고 고움에 마움을 두지 않으면 다리 펴고 길이 쉬리라. 다른 사람을 교화하려면 마땅히 방편을 쓰라. (육조단경의 게송 중에서 인용) T. 내 보기에 아내가 고집이 세다고 한다면 나 역시 고집이 센거다. 아내의 고집을 꺽으려는 고집이니 말이다. "다만 그르게 여기는 마음을 없애고 번외의 뿌리를 뽑아 없애어 밉고 고움에 마움을 두지 않으면 다리 펴고 길이 쉬리라." 아직 이 부분이 나에겐 희미하다.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곧 모든 인식활동이 저마다 한 세계를 산출하므로 우리의 출발점은 생물이 자신의 존재영역에서 벌이는 효과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과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을 내놓기 위한 우리의 출발점은 인식을 효과적인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다. 곧 한 생물이 특정 환경에서 자신의 세계를 산출함으로써 그 환경에서 생존을 지속케 해주는 행위로 인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앎의 나무 38) T. "자신의 세계를 산출함"을 따라가면, 그리고 "그 환경에서 생존을 지속케 해주는 행위로 인식을 이해"하면. 환경에서 생존을 지속케해주는 나의 행위, 나의 인식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의 창조를 따라해야 할 것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현재에 깨어있어야 창조적 ..
1. 먼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여성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상사가 자신에게 너무 많은 업무를 해줄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어 힘들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요 “How would you suggest handling people who expect too much from you? For example, despite the current pandemic and the restrictions imposed, my boss still expects us to be working like we were during pre-pandemic times and the amount of meetings we have not decrease..
상대의 단점을 보면,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저는 성격이 강하거나 무례한 사람을 대할 때 자꾸 분별심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분별심이 나요?” “제가 봤을 때 단점으로 보이는 부분이 발견되면 ‘저런 부분은 고쳤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요.” “질문자는 자기 성격을 쉽게 고쳐요, 못 고쳐요?” “행복학교에 나가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서부터는 성격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래도 그 나물에 그 밥이에요. 성격은 잘 못 고칩니다. 성격을 고치려면 한 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환골탈태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꾸 남의 성격을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내 성격도 고치기 어려운데 어떻게 남의 성격을 고치겠어요. 자기는 그나마 행복학교를 다녀서 조금씩 변할 수 있었지만, 그 ..
1. 반야심경에 '불생불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생하고 멸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2. 이것은 실재가 아닌 인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릇에 얼음구슬을 담아놓았는데, 네다섯 살짜리 아이가 바깥에 가서 한두 시간 놀다 들어오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지고 물만 담겨 있습니다. 아이가 그걸 보고 뭐라고 할까요? "엄마, 내 구슬이 없어졌어. 그리고 물이 생겼어"라고 하겠죠. 이때 엄마는 그 과정을 아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다만 얼음이 물로 변한 거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생멸의 관점을 갖고 세상을 보기 때문에 생겼다고 기뻐하고 사라졌다고 슬퍼합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