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를 성찰한 삶은 중심 잡힌 삶을 산다. [표상주의와 유아론도 아닌, 상주론과 단멸론도 아닌, 쾌락주의도 금욕주의도 아닌 중도], 중도의 길잡이인 이중보기, 환상처럼 보기를 통해 어떤 집착도 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자신의 신체를 하나의 신전으로 만든다. 1. 니체는, 자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생애를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금욕적인 덕목들-겸손, 검소, 순수-을 독점하여, 그것들을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실제로는 거의 금욕적이지 않은 목적들에 사용한다. 철학자는 그것들을 자신의 독특함의 표현으로 삼는다. 철학자에게서 그것들은 도덕적 목적들도, 또 다른 삶을 위한 종교적 수단들도 아니며, 오히려 철학 그 자체의 이다. 철학자에게는 또 다른 ..
1.[괴로움] 존재의 어느 한 차원에서 구조접속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것에 대해 성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거나 생각을 주고받을 때 하는 행동조정이 우리의 경험과 얼마나 뗄 수 없게 뒤얽혀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때때로 어느 한 차원에서 우리의 구조접속이 허물어지는 일은 일상생활에서 (이를테면 물건을 사거나 아이를 키울 때) 거듭 나타난다. 이것은 끝없는 역사적 변천과정 속에서 우리의 개체 발생적인 구조적 표류가 방향을 바꾸게 되는 계기들이다. 2.[기적] 사람들은 보통 사회적 삶의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조차 거기에 담긴 언어적, 생물학적 응집성 뒤에 역사적 연관관계가 있음을 때닫지 못한다. 독자들은 아주 흔한 대화에 담긴 여러 과정들을 눈여겨본 적이 있는가? 예컨대 말할 때..
1. 사람은 사회적 삶 속에서 언어적 영역을 산출하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만이 언어적 행동조정을 통해 새로운 현상계인 언어의 나라를 산출한다. 이것은 행위의 공동개체발생적 조정을 통해 생긴다. 사회적 체계의 구성원들이 함께 살면서 겪는 공동개체발생적인 구조적 표류야말로 언어적 영역의 핵심을 이룬다. 사회적 체계를 밖에서 바라보는 관찰자에게 이 표류는 비상하게 어우러진 행동조정들의 춤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행동조정들을 통해 여러 실체가 생긴다. 2. 재귀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흐름 속에서 언어가 생기려면, 언어적 영역에서 언어적 영역 자체에 속한 행동들의 상호조정이 일어나야 한다. 언어가 생기면 언어적 구분의 언어적 구분인 객체가 생긴다. 객체는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행동조정들을 가리는..
인식 또는 앎 특정 맥락에서 효과적인 (또는 적절한) 행동을 관찰할 때 우리는 인식이란 말을 쓴다. 이때 특정 맥락이란 관찰자인 우리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던진 물음에 따라 규정된다. (앎의 나무 195) T. 인연을 따라 행한다는 표현은 신경계 측면에서 구조접속의 자연표류를 의미하며 인식으로 본다면 특정맥락이라는 인연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생각된다. 한가지 든 생각은 인연을 따라 행하는 게 신경계의 구조접속인 자연표류라면 벌어진 일들은 모두 잘된 일이고[자연표류이니] 이를 긍정하고 다른 표류의 구조접속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일어난 일들은 모든 잘 된일 임을 긍정할 필요가 있다. 또 이 긍정이, 긍정의 긍정으로 표류할 때 인연을 따라 행한다는 표현이 내겐 완전해진다. 나는 그동안 인연을..
이중보기[한편으론 행동으로 관찰, 한편으론 신경계의 구조변화일 뿐] 2. 관찰자에게는 유기체의 활동이 마치 변화하는 환경에 알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관찰자는 학습이란 말을 쓴다. 관찰자에게는 유기체가 상호작용할 때 주위 환경에 대응하여 신경계에 구조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경계의 작업방식을 바탕으로 볼 때는 오직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유기체와 환경 사이에 구조접속(곧 적응)이 매순간 보존되는 경로를 끊임없이 밟아가는 구조적 표류가 있을 뿐이다. (193) 1. 신경계가 매우 신축적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것이 세상 사물에 대한 모사 또는 기억의 흔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결과로 신경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환경의 변화와 줄곧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