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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의 <장자>

조삼모사에 관하여

T1000.0 2013. 4. 24. 22:51

 

헛되이 애를 써서 한쪽에 치우친 편견을 내세우면서 실은 모두가 하나임을 알지 못한다. 그것을 조삼(朝三)이라 한다. 조삼이란 무엇인가? 원숭이를 부리는 사람이 원숭이에게 상수리를 나누어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다."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그래서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다."하니까 원숭이들이 모두 좋아했다. 명칭(표현)도 내용(실질)도 변함이 없는데 기쁨과 노여움이 일게 되었다. [그것은 시비에 구애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시 자연 그대로의 커다란 긍정(肯定)에 몸을 맡기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시비를 조화시키고, 자연의 균형(天均)[즉 만물제동(萬物齊同)의 도리]에서 쉰다. 이러한 것을 양행(兩行;대립된 두 쪽이 다 순조롭게 뻗어 나가는 입장)이라고 한다.[각주:1] 

   

<장자> 재물론

 

다음 동영상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인데, 조삼모사에 나오는 양행兩行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는 생각에 여기 남겨본다. 

http://www.youtube.com/watch?v=dhEVCH-cETY&list=PL27E71746CF3D080F&index=160 

 

사족: 원숭이들은 조삼모사보다 조사모삼이 이익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나 실은 둘이 하나이다. 조삼모사와 조사모삼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인데, 말하자면 둘 다 같은 이기심인데 같은 것을 두고 좋고 나쁨을 시비한다. 이에 성인은 둘이 하나임을 알고 원숭이들의 요구를 가볍게 들어준다. 원숭이들의 요구, 조사모삼이 처음에 제안한 조삼모사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두고 고민할 필요가 어디있겠는가! 가볍게 들어줌을 통해 원숭이와의 시비를 조화시키고 자연의 균형에서 쉰다. 즉 양행을 이룬다.  

 

 

 

  1. 번역인용은 안동림 역주 <장자> 현암사 p6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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