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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학 또는 리더십

인정욕망

T1000.0 2013. 12. 31. 04:59

1.

아솅보 당신은 실내 장식가였지요?

베이컨 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싫어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장식은 그림과 대립하죠. 정반대입니다. 나는 또한 장식적인 경향이 있는 그림을 혐오합니다. (p57)

 

아솅보 당신은 방금 사람들이 왜 당신의 작품을 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당신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에게 상관이 있습니까. 혹은 없습니까?

베이컨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립니다.(p66)

- <화가의 잔인한 손>

 

 

2

 

엄마든 아버지든, 혹은 사회라고 불리는 타자든 '그들'의 인정을 욕망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내가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하며 살게 된다. 타자, 혹은 그들의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헤겔은 인정욕망 때문에 발생하는 두 사람의 인정투쟁 속에서, 목숨을 걸고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싸운 자가 주인이 되고, 공포 때문에 물러서고 굴복한 자는 노예가 된다고 했다. 이쯤 되면, 인정욕망은 자유로운 인간(주인)의 본질이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여기서 주인과 노예의 차이는 아주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정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모두 노예다. 인정욕망의 노예고, 인정받으려 하는 자의 노예다. 인정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누구든 자신이 인정을 구하려는 누군가의 욕망에, 그 누군가가 갖고 있는 인정의 잦대에 포획되기 때문이다.

진정 주인이라면 굳이 남의 인정을 받으려 할 이유가 없다. 남이 인정해주든 말든, 자신이 진정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게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남의 인정을 구하여 싸움질할 정력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더 열심히 하는 게 주인 된 자의 지혜고 자유로운 자의 영혼이다. 남을 지배할 때에만, 그에게 주인으로 인정받을 때에만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자는 주인이 아니다. 노예의 인정에 메인, 또다른 노예일 뿐이다. 진정한 주인은 노예를 부리는 '노예의 주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뜻대로 부리는 '자신의 주인'이다.

지금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대개 취직하기 위해서다. 공부하는 것은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스펙을 쌓기 위해서고, 스펙을 쌓는 것은 그게 멋져서가 아니라 취직할 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공부하는 게 아니라, 취직하는 데 필요한 것을 공부한다. 즉 자본가들이 바라는 것,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잘하고자 공부한다. 자본가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욕망에 의해 자본가의 요구를 자신의 욕망으로 삼는 것이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나를 부릴'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런 공부는 자신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정확하게 나를 부릴 자들을 위한 공부다. 그들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는 공부다.

자본가들 또한 다르지 않다. 자본가는 물건을 만들 때, 자기다 좋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만들지 않는다. 팔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에, 살 사람의 욕망을 겨낭해서 만든다. 즉 소비자의 인정을 받는 상품을 만들고자 욕망한다. 그들 자신의 말대로 그들은, '소비자에게 봉사하는' 노예다. 대학생들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한 것이다. 즉 그것은 노예의 요구인 것이다. 한편에 노예가 있고, 다른 한편에 그 노예의 노예가 있다. 노예가 노예를 만들고, 노예가 노예를 부리는 체제. 그 이중의 노예의 체제가 자본주의다. 그 체제를 작동시키는 것이 인정욕망이다.   

- 이진경, <삶을 위한 철학수업> p227

 

 

T1000.0 :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림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때 실내장식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와 관련해 '어떤 면'에서 장식은 그림과 대립된다고 하는 그의 말이 오늘 <삶을 위한 철학수업>을 읽으면서 왜 그런지를 알게 되었다. 인정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선. 부지불식간의 그들의 인정을 욕망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그들의 문제라고 성찰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화가가 나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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