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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저 집에 들어가면, 내가 백성이 되겠느냐 아니면 저 집이 궁궐이 되겠느냐."

 

 

신하들을 호령하는 왕[각주:1]의 언행에선 비범함이 느껴집니다. 여느 왕과는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는 이 왕의 포스는 어디서 나

 

올까요? 앞선 글에서 말한바대로 왕의 중도가 왕의 존엄을 드러냅니다. 이 왕은 궁궐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또한 백성의 집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즉 왕은 양극단을 상징하는 궁궐도, 여염집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은 하룻밤 거처로 여염집을 택

 

합니다. 이유인즉 왕은 주어진 시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풀어말하면 왕과 신하들의 눈앞에는 밤 늦은

 

시간과 민가라는 공간이 당도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은 그때그때마다 중심이 되는 중도로써 여염집을 택한 것입니다. 반면

 

에 신하들은 눈앞에 당도한 '지금 여기'를 거부하고 환궁할 것을 고집합니다.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여염집 주인도 '존귀

 

하신 왕께서 어찌 이 누추한 곳에 묵을 수 있겠냐'고 펄펄 뛸 것이 뻔합니다. 신하와 백성이 다들 아니될 일이라고 펄쩍 뛰지만

 

왕은 어디에도 걸림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왕의 중도입니다. 중도는 어디에도 메이지 않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는 왕이므로 누릴 수 있습니다. 왕은 한 나라의 군주(君主)입니다. 한자를 풀어 말하면 '현명한(君) 주인(主)'입

 

니다. 왕은 언제 어디를 가든 왕이며, 자유이며, 온천하의 주인으로 행동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강조할 것은 왕의 현명함이, 또

 

는 현명한 행동이 높은 학식이나 지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학식이나 지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앞서

 

비범한 왕의 중도가 보여주듯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정도만으로 충분합니다. 지혜는 특별한 능력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며

 

편견을 버리고 여실(如實)이 바로 볼 때 나타납니다. 그런 점에서 누구든지 왕의 현명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하들이

 

나 백성들보다 왕이 현명한 이유는 뭘까요? 옛부터 왕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통합니다. 한마디로 드높은 분입니다. 왕

 

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드높은 곳이 얼마나 높으냐하면 대붕(大鵬)이 날아오르는 하늘 만큼 높습

 

니다. <장자>에 나오는 통큰새 대붕을 아시죠? 대붕은 거대한 날개로 9만리[각주:2] 창공을 휘돌아 날아오르는 새입니다. 대붕이 9

 

만리 하늘을 날아올라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바로 왕의 시선입니다. 이 정도로 높은 곳에서는 모든 게 바로 보입니다. 있

 

는 그대로 보입니다. 사방으로 막힘이 없으니 바르게 볼 수 있고 바르게 볼 수 있느니 바르게 판단합니다. 바르게 판단하니 바른

 

행동이 나옵니다. 바른 행동은 중도입니다. 때문에 왕의 현명함은 왕의 드높은 시선의 배치이기도 합니다. 한편 통큰새 대붕은

 

원래 곤이라는 작은 물고기였다고 합니다. 즉 시작은 누구나였습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듯 왕의 현명함은 왕이기에

 

가능하면서 또 누구나 가능한 것입니다.

 

왕은 또한 주인입니다. 주인으로서 왕의 남다른 태도는 하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섬긴다는 뜻은 하늘의 이치, 즉 자연

 

의 이치를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것을 무엇을 말할까요? 왕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루고 못이루고는 사

 

람의 뜻과는 무관하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사람의 일을 할 뿐이고, 그 결과는 하늘이 내려주신다.' 주인으로서 왕의 특징

 

은 긍정입니다. 왕은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고 최선을 다해 할 뿐입니다. 그런데 왕의 긍정은, 한번이 아니라 두번의 긍정입니다.

 

한번은 다만 할 뿐을 긍정하고 다시 그 긍정 자체를 또한번 긍정합니다. 그리고 다만 할 뿐을 긍정하고 동시에 그자체를 긍정하

 

는 두번의 긍정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는 목적이 수단이고 수단이 목적인 하나된 방

 

식, 목적과 수단이 분리되지 않는 긍정의 긍정입니다. 이를테면 여행이 곧 목적지입니다.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이고 행복이고 보

 

상인 여행. 왕은 이중 긍정을 통해 과정으로서의 삶을 사랑합니다. 또한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으니 실패해도 성공이고 성공해도

 

성공입니다. 왕은 긍정의 긍정으로인해 삶을 이미 승자로 살아갑니다. 주인으로서 왕은 이렇게 삶을 이중 긍정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길, 중도의 삶을 창조합니다. 

 

 

중도와 이중 긍정의 왕은 어디를 가든 자유롭습니다. 비록 그곳이 자기의 영토가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가 있는 자리가 바

 

로 참된 곳, 그의 영토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주인이 된다면 그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된 곳이다."(임제록)

 

 隨處作主 立處皆眞

 

 

 

 

 

 

 

  1. 제왕학과 리더십1: 중도 참조. [본문으로]
  2. 정확히 말하면 9만 3천리입니다. 붕은 자신의 날개로 3천리를 날아오를 뿐입니다. 나머지 9만리는 폭풍같은 바람을 만나야 가능합니다. 즉 시절인연을 만나야 붕은 대붕이 됩니다. 9만리 창공의 대붕보다 실패를 거듭하며 숱하게 날개짓한 3천리의 노력, 이 천신만고의 수고가 붕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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