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개념의 장점은 그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있는 체계가 단순화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궁극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기계라는 개념은 투입과 산출 관계, 변형의 규칙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추상적 틀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제시하는 것은 하나의 형식으로서 이는 인간과 우주는 단수화될 수 없으며 분석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세히 증명하고 훈련된 방식으로 논의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문제는 근본적으로 단순성과 비단순성의 대립입니다. (발명품 92)
어떤 자연법칙에는 항상 저자가 있습니다. 아이작 뉴턴의 법칙에 따르면 수성이라는 행성은 특정 시점에 어떤 위치에 존재해야 합니다. 웃기는 점은 수성이 그런 법칙을 고부고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성은 예상되는 시점에 미리 계산된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하지요? 사과를 훔치기를 금하는 법을 만들어 놓았는데 누군가가 사과를 훔쳤다면 당연히 사과도둑이 벌을 받습니다. 법을 만든 사람은 벌을 받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법칙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는 수성의 경우는 약간 어렵습니다. 법률적으로 말하자면 뉴턴을 벌해야 할까요, 아니면 수성을 처벌해야 할까요? 어느 쪽이 감옥에 가야할까요? 수성의 움직임에 맞지 않는 자연법칙을 발명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미리 계산된 방식으..
당신은 뛰어난 교사 같군요. 대화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당신이 여기서 제안하는 것은 우선 교수법에 맞는 혹은, 정치적인 전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주의적인 클럽과 객관주의적인 클럽에 운동(움직임)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출발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와는 반대로 아예 무대에서 걸어나와서 서커스를 떠나 버리고 싶습니다. 저의 목적은 거대한 단어들(거대담론)을 벗어나는 것, 그런 단어(단어풍선)에다 구멍을 숭숭 내는 것, 그리고 구성주의라고 하는 것에 대한 회의론마저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해지는 것은 (사람들이 특별한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려 하는 것, 다른 사람은 무엇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해서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 아주 특정한 놀..
1972년에 볼프강 프라이저라는 사람이 저를 어떤 생태학 학회에 초대했습니다. 제 동료들은 그 당시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하나의 실체로 이해된, 인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환경이라는 것을 막 발견했었습니다. 학회기간 중 저는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실재를 구성하는 것에 대하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저의 목적은 환경이라는 것을 우리의 산물, 우리의 발명품으로 파악하게 만들고 그것을 우리의 책임영역 속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자기 파괴에 다름 아닌 것으로 지각하게 만들고 안팎(우리와 환경)을 고정적으로 나누는 것이 옳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오늘날 큰 유행이 된 구성주의적 학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발명품 65)
진리를 둘러싼 투쟁이 다시는 있지 않도록 하는 그런 내재적으로 윤리적인 언어사용의 특징에 대해서 말을 해 볼 다른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당신은 객관성 필연성 혹은 선악에 대한 정적인 구분에 눈길도 돌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분명하게 만들고 지침을 주는 시각적 비유나 은유가 없을까요? 제게는 춤추기의 비유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겠지요. 영어 표현에 '혼자서는 탱고를 출 수 없어! 탱고를 추려면 둘이여야 해.' 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고 세상과 춤추기를 시도하며 서로를 이끌고 함께하는 것, 공동체가 됩니다. 사람들은 지금 춤추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춤추기로 결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저 춤을..
남는 것은 그러면 정말 밋밋한 인식의 동기뿐이군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단지 기능함이 문제가 될 거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기능함 자체도 우리가 환영하고 기뻐할 만한 기적의 연속으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비틀거리고 넘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넘어지지 않으면 그것도 우리가 함께 샴페인을 떠뜨릴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한 번 더 강조하건대 저는 기본적으로 진리와 거짓, 주관성과 객관성에 대한 전체 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런 범주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방해하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신앙고백하도록 강요하는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그런 개념들을 정말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개념들은 그냥 언급되기만 해도, 거절되기만 해도 자..
인간의 완전성, 가능성(운전, 비행, 멋진 컴퓨터 등)을 설명해 내려는 것, 그것은 인간의 희망사항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원리들은 문화적으로 조건 지워져 있으며 때로는 아주 다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명원리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런 설명 저런 설명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전기모터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실재론자는 맥스웰의 원리를 이용할 겁니다. 그리고 주술사라면 설명되지 않는 것을 다루는 (대면하는) 방법을 이해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들이 가진 가설들이 명백히 기능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연의 운행비밀을 끄집어냈음을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라고) 제게 물으면 저는 완벽히 설명 가능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바람, 놀라움을 만족스럽게 제거해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