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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사들의 지혜란, 편견 없이 경청할 수 있는, 그리고 '개방성과 무간섭'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의 능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게 나의 주장입니다.

1.
선생님의 작업이 신녕의 이론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요법적 의미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유명한 치료사가 선생님의 작업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시명령적 간섭의 신화를 던져 버렸기 때문에, 구성주의적 치료사들은 자기 환자들의 건강의 증진과 치료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던져버려도 좋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겠죠. 설령 환자가 악화되더라도 치료사들은 결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치료사들이 어떠한 비판적인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정당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더 자세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말하고 행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 그들이 나의 행위들과 발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또는 해석하는지에 대해 책임질 수 없습니다.그들은 자기들이 듣는 것을 듣고, 자기들이 이해하는 것을 이해하며, 자기들이 하는 것을 합니다. [T1000.0 그것은 그들의 문제, 그들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어떤 발언이나 행위가 - 성공적인 간섭으로 인해 - 어떤 개인 안에 바로 그 의도된 결과를 낳았다 - 그래서 어쨌든 우리가 이제 책임을 떠맡야야만 한다 - 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당신이 인용한 그 필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전의 한 면일 뿐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행위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내 자신의 이해에 따라 내가 말하고 행하고 있는 모든 것에는 틀림없이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들의 영역에서, 또 체계적 네트워크에서 내가 초래한 모든 것에도 마찬가지로 책임이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어쩌면 그들을 기만하거나 속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이한 의도들은 상이한 종류의 행위를 낳습니다.


 2.

 

선생님이 요법학계에 대해 정식화할 핵심 요구는 다음과 같은 것이 되겠군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결정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나 당신이 무엇을 하건 간에 그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선언하라.'

바로 그겁니다.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할 수 없다고 깨닫게 된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위들이 갖는 성질이 그들의 지혜의 범위에 달려 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됩니다. 치료사들의 지혜란, 편견 없이 경청할 수 있는, 그리고 '개방성과 무간섭'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의 능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게 나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관계 속에서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은 편견과 개인적 편애에 의해, 그리고 속임수 기술들이나 통제욕망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그것이 드러나는 형태 속에서 지각됩니다. 이것을 해내기 위해서 우리는 최대한 경청해야 하며, 우리의 지각이 성급한 판단 때문에 맹목적으로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듣고 있는 것에 영향을 끼치는 감정들을 의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참견하기 좋아하고, 화를 내며, 질투심이 강하거나 오만한 사람들은 모두 틀림없이 제한된 방식으로 들을 것이고, 그래서 그 이상의 마주침의 가능성들을 배제할 것입니다. 그들의 주의[배려]는 다른 사람의 특수한 성질들에 의해 억제됩니다. 우리의 '귀 기울여 듣기'를 제한하지 않고 넓여 주는 유일한 감정이 바로 사랑입니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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