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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쁨이란 인간이 보다 작은 완전성에서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3. 슬픔이란 인간이 보다 큰 완전성에서 보다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해명: 나는 이행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기쁨은 완전성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이행하여 얻은 그 완전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는 기쁨의 감정 없이 그것을 소유했을 것이다. 이것은 기쁨에 반대되는 슬픔의 감정에 의해 더욱 명백하다. 왜냐하면 슬픔은 보다 작은 완전성으로의 이행에 존재하며 보다 작은 완전성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인간은 어느 정도의 완전성을 나눠 갖는 한에 있어서는 슬픔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슬픔은 보다 큰 완전성의 결핍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결핍은 무이지만, 슬픔의 감정은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슬픔의 감정은 보다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움직임, 즉 인간의 활동능력이 감소하거나 억제되는 움직임 이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없다(정리 11 참조).[각주:1]

 

T1000.0 :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이행이란 통찰은 기쁨도 슬픔도 붙잡을 수도 소유할 수 없다는데 있다. 자신의 슬픔이 다른 사람의 더 큰 슬픔 앞에선 위안이 될 때를 생각하면 슬픔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쁨도 마찬가지. 염두해 둘 것은 보다 작은 완전성과 보다 큰 완전성에 대한 기준이 따로 없다. 만약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낀다면 겨울을 느끼는 신체가 보다 작은 완전성이고 봄을 느끼는 신체는 보다 큰 완전성이 될 것인데, 겨울이 봄보다 작은 완전성일 수 없으며 그렇게 느끼는 것은 신체가 그렇게 느끼도록 형성된 인연에서 그러할 뿐이다. 따라서 어떤 정해진 기준은 없다. 그러므로 본래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스스로 기준을 세우므로써, 기쁨도 슬픔도 생겨난다. 거꾸로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기준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은 인간 신체의 변용에 따라 무상하다. 중요한 것은 이 무상성無常性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이행임을 말이다. 

 

 

 

  1. <에티카> p2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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