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화스님 풀어씀 <대승기신론>

공덕

T1000.0 2012. 11. 21. 13:09

이와 같은 알아차림은 진여 법성의 공덕과 계합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리는 마음이 진여 법성이 되는 것이지요. 수행으로 공덕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하는 마음이 법계의 무한한 공덕을 이루며, 이미 이루어진 공덕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한이 없는 공덕을 얻는다고 합니다.

마음 하나하나가 법계의 마음이 되고, 법계가 된 마음이기에 쓰는 마음마다 법계의 공덕을 드러냅니다. 무엇을 갖는 것으로 나를 세우려는 마음을 비우지만, 비워진 마음자리에 법계의 생명활동인 온갖 공덕들이 하나하나 채워집니다. 이 마음은 비울수록 커지며 아무리 쓰더라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법계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진여공성의 공덕이 모든 생명들의 마음에 담겨 있습니다.

 

법계의 공성에서 나타나는 공덕은 법계의 인연이며, 생명의 장이며, 생명들의 차이입니다. 밖으로 드러난 생명활동에서 보면 제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인식되지 않는 인연으로 법계와 함께 각각 생명을 이루는 것에서 보면 아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지요. 한 줌의 흙 속에 들어 있는 수억의 미생물들은 나무가 내려다 주는 햇빛의 에너지를 받아 생존하면서 흙을 살지게 하여 나무를 튼튼하게 만들듯, 법계는 하나하나에서 보면 단지 하나인 것 같지만 결코 하나만으로 존립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 사는 것이면서도 그것이 이웃 생명들의 존립기반이 되어야만 법계의 공덕이 실현되는 진실한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은 바로 잃어버린 인식인 법계의 공덕을 다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루 밤낮만의 수행으로도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덕을 성취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 비움'으로 기억과 추상에서 자유롭게 되고, '마음 나눔'으로 새로운 인연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머묾 없는 자유로운 알아차림이 수행자의 마음이면서 법계의 인연에 부합하는 마음이며, 보살과 부처가 되는 마음입니다.[각주:1]

 

T1000.0 :   수행으로 공덕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공덕을 알아차림이 수행이고 알아차린 공덕이 한이 없으니 한이 없는 공덕을 얻었다고 한다. 누구나 누리는 공덕이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여 따로 구하니 길에서 길을 찾고 있다.

 

대승의 가르침을 믿지 않고 비방한다고 하면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어느 날 깨달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 밖에서 마음을 찾는 것과 같으니 찾을 날이 없겠지요. 그렇기에 믿지 않는 허물이 크고 그에 따른 고통이 한이 없다고 합니다. 아프다고 하면서 아픈 자리를 돌아보지 않고 엉뚱한 곳을 찾는 것과 같지요. 아픈 마음이 언제나 마음 밖의 조건에 의해 아프다고 생각하는 한 자재한 마음, 자유로운 마음, 걸림 없는 마음, 머묾 없는 마음을 의지적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밖의 대상에 의해서 마음이 요동을 치게 되니 어느 날인들 고요하겠습니까. 잠시 고요한 듯하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욕망으로 편한 날이 드물겠지요. 채워질 수 없는 갈증으로 끝이 없는 목마름입니다. 마음 가득 법성의 공덕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삶이지요.[각주:2] 

 

 

  1. <대승기신론2> p454 [본문으로]
  2. <대승기신론2> p456 [본문으로]

'정화스님 풀어씀 <대승기신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직 할 뿐  (0) 2012.11.21
삼보의 종자  (0) 2012.11.21
비밀은 없다  (0) 2012.11.21
서방정토  (0) 2012.11.21
발걸음  (0) 2012.11.21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