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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마다 법성의 공덕이 빛나는 알아차림으로 나타난 것인 줄 믿는 그 마음야말로 부처를 다 드러낸 마음입니다. '마음 비움'과 '마음 나눔'이 공덕인 줄 사무치게 아는 마음이 대승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며 자신에 대한 믿음이며 이웃에 대한 감사함이며 함께 소중하고 귀한 삶을 사는 바탕이 됩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소중히 간직하여 받아들이고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지 않고 비방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칠 뿐만 아니라 이웃까지를 해치게 됩니다.

믿지 못하는 것은 자기 동일성의 독립된 실재가 이웃 없이도 존립할 수 있는 것처럼 사유되는 업식의 허위가 시대를 넘어 전달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차이를 드러내게 하는 이웃들에 의해서 '나'도 설 수 있고, 나의 내적인 차이에 의해서 생명활동과 인식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자기 동일성이라고 할지라도 늘 같은 것일 수 없습니다.

'나'라는 인식을 중심으로 하는 자기 업식과 사회적 공통 분별인 사회 업식에 의해서 본각인 진여공성을 깨닫기 어렵게 되고, 본각을 깨닫지 못하는 한 본각이 본각일 수 없는 데서 무지무명無知無明만이 인식의 중심이 되므로 깨달음을 기약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삼보[불법승]의 종자가 싹틀 수 있는 기반이 메말라 있는 것입니다. 중생의 삶에서 부처의 삶이 시작된다고 보면 삼보가 새로 생겨난 것과 같으나, 인연의 각성이 삼보를 구성한다고 보면 '본래 깨달음[本覺]'이 삼보의 종자이면서 열매가 되기도 하므로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삼보의 종자가 싹틀 기반이 사라진 것에서 보면 부처의 삶이 끝난 것 같지만 우리네 삶이 인연의 각성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서 보면 삼보의 종자가 끊길 수 없습니다. 대승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는 수행자는 언젠가는 깨닫게 되기 때문에 삼보의 종자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각주:1]

 

T1000.0 : 생명의 강이 흐르는 한 삼보의 종자도 끊길 수가 없다. 삼보인 불법승을 불교 또는 출가자로만 한정 지을 것이 아니라 불법승 너머의 불법승, 종교와 사상 간의 경계를 허무는 불법승 삼보라고 말하고 싶다. 회통의 삼보.

 

 

  1. <대승기신론2> p45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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