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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0명이 한 방에서 자면 그 100명이 다 다른 꿈을 꿉니다. 한 방 안에서 바로 옆에 누워 꿈을 꿔도 서로 같지 않습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삽니다. 그 꿈과 같은 것이 바로 자기 생각입니다. 자기 생각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은 완전히 서로 다른 세계에 들어가서 살고 있다는 뜻이에요. 한 공간에 있어도 전혀 다른 차원, 다른 세계에 살아요. 부부도 그렇습니다. 같이 살아도 외롭고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서로 통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부대끼는 속에 살고 층층으로 위, 아래, 옆 할 것 없이 사람이 있어도 외로워요. 우리가 자기 생각 속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자유로워지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깨어있기 78)

2.
만일 우리가 말해지는 모든 것이 불가피하게 관찰자에게 다시 귀속된다는 것을 여전히 깨닫고 있다면, 우리의 보편타당한 실재는 무수한 상이한 실재들로 산산조각이 나 버립니다. 이 지구상에는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60억 이상의 실재들이 존재한다고 말할 건가요?

그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사실상 거의 있을 법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60억 사람 중에서 약 50억이 괄호 없는 객관성의 길을 따른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다소간, 동일한 실재 영역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알라신을 믿고 또 다른 사람들은 여호와나 예수를 믿습니다 .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불가지론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식을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실재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들의 궁극적 준거점으로 이념들이나 관념들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의 근본적인 확실성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이 믿고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1
[근본적인 확실성을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생각에 사로잡힘이다. 자신들이 믿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의 오류. 이른바 무지]

3.

나머지 10억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선생님은 그들의 태도를 어떻게 특징지을 건가요?

그들은 '어쩌면' 괄호 친 객관성의 길을 따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찰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차이들을 존중할 것이고, 자신들이 진리의 유일한 소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교제를 즐길 것입니다. 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차이나는 문화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가능한 실재들의 수는 잠재적으로 무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다양성은 공동체적 생활에 의해, 함께 창조한 문화들과 역사들에 의해, 공유된 이해들과 편견들에 의해 갇히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분명히 차이나지만[다르지만] 완전히 차이나지는[다르지는] 않습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68)


1-1
100명이 한 방에서 자면 그 100명이 다 다른 꿈을 꾼다. 100명이 다 그대로 다양한 실재를 만드는 것이 실상임을 긍정하는 마뚜라나. 그중에서 괄호 친 객관성의 길을 따르며 교제를 즐기는 깨달음의 그룹의 옹호. 그 그룹으로의 초대. 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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