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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 문제는 이제, '어떤 식으로도 지배와 연루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매우 근본적인 종류의 존중을 증진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이 일관성을 지키고자 한다면,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하라고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배와 조작을 용인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어떻게 사람들을 확신시키죠?
나는 결코 누구도 확신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 생각들을 접하고는 골치 아파 합니다.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나는 결코 그들의 견해들을 교정해서 내 자신의 생각을 그들에게 강제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사람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내가 출간한 것들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것들이 그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내가 쓴 것을 단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강의를 들으러 오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나의 성찰들을 따르고자 하는 초대입니다. 내가 해야할 유일한 일은 나와 대화하려 하고 대화하고 싶어 하는 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나는 논문과 책들을 쓰고 학생들과 작업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어쩌면 한 젊은이가 독일에서 칠레로 건너와 나를 방문해서는 더 꼼꼼하게 세부적인 것들에 해대 물을지도 모르지요. (함으로 78)
2.
< 금강경 6장 >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혹 어떤 중생이 이러한 말씀(章句)을 듣고서 진실이란 믿음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그런 말을 말라. 여래가 멸도(滅度)한 뒤 나중 오백년(後五百年)에도 계(戒)를 지키고 복(福)을 닦는 이는 이 말씀에 믿음을 내어 이것을 진실이라 여기리니, 이런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이나 셋․넷․다섯 부처님께만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백․천만 부처님께 온갖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는 잠간 동안이라도 깨끗한 믿음을 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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