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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의 흐름은 잠시도 머묾 없는 무상 가운데 인연의 총상을 다 드러내기 때문에 기억된 대로 읽혀질 수 없습니다. 흐름을 이해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기억은 생명이 살아가는 데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였기에 대물림되었겠지만, 기억만으로 현재를 읽는 순간 현재의 무상과 어긋나므로 기억이 망념妄念이 됩니다. 무상한 연기를 새롭게 읽어내지 못하게 하는 기억들의 집합인 업식과 그 활동이 망심이 되는 까닭입니다.
기억은 언어로 된 분별을 집착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단어는 다른 것과 상관없이 그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나 형상과 상응한다고 여기면서, 그 이미지와 형상을 붙잡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망념의 기억은 실재라는 이미지를 갖는 기억입니다. 이러한 기억들의 모임이 스스로를 하나의 단일체로 여기면서, 알고 기억하는 주체로서 '나'를 세우고, 그 나를 다시 기억하고 대물림합니다. 업식의 활동과 기억에 일정한 패턴을 갖는 흐름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것을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인연이 달라짐에 따라 기억의 패턴과 행동 양상이 달라진다면 그때까지 갖고 있는 기억과 업식의 흐름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것을 '없어졌다'고 합니다. 생겨난 것은 기억하여 갖고 있는 것이며, 없어진 것은 기억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실제로 생겨나거나 없어진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본바탕은 연기의 총상에서 밝은 앎으로 인연의 어울림을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기억된 망념을 떠올려 알아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본래 자리는 망념이 없습니다. 진여인 마음은 모든 것을 그 모습 그대로 다 드러내는 밝은 광명과 같습니다. 대지혜광명大智慧光明의 공덕상空德相입니다. 1
- <대승기신론2> p12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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