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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번뇌가 있을 때는 깨달음이 없지만, 깨달음은 깨달음에도 머물지 않는 앎이기에 번뇌를 갖고 있는 상태가 있을 수 없습니다. 번뇌가 깨달음이라는 뜻은 번뇌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변해 깨달음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별해 갖고 있는 앎이 무상성을 회복할 때, 갖고 있는 분별상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는 마음에 의해 번뇌와 깨달음이 상대하는 분별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곧 번뇌도 번뇌라는 실체를 갖지 않고 진여 자성의 알아차리는 마음 또한 번뇌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번뇌가 일어나는 순간 번뇌인 줄 알아차릴 수 있으며, 알아차리는 마음에 의해 번뇌가 번뇌로 작용하지 않게 되고 나아가 번뇌의 자성이 없는 줄 체득하게 되므로 번뇌가 있는 그곳에 깨달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번뇌가 깨달음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만 깨달음의 순간이 깨달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상한 변화가 그 자체로 법계의 인연에 대한 깨달음이 되므로, 깨닫는 사건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일 수 밖에 없으면서 앎이라는 특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깨달음으로 기억되는 것과 같아 한 번 온전히 깨닫는다면 한 순간의 깨달음이 완성된 깨달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모든 인연은 그 자체로 완성된 인연이므로, 깨달음으로 나타나는 인연의 앎도 그 순간 온전한 닦음으로 더 닦을 것이 없는 현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앎과 이룸이 단박에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 정화스님, <육조단경> p19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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