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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그 자체가 중심이 되고, 움직임은 더 이상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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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둘러싼 투쟁이 다시는 있지 않도록 하는 그런 내재적으로 윤리적인 언어사용의 특징에 대해서 말을 해 볼 다른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당신은 객관성 필연성 혹은 선악에 대한 정적인 구분에 눈길도 돌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분명하게 만들고 지침을 주는 시각적 비유나 은유가 없을까요?
제게는 춤추기의 비유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겠지요. 영어 표현에 '혼자서는 탱고를 출 수 없어! 탱고를 추려면 둘이여야 해.' 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고 세상과 춤추기를 시도하며 서로를 이끌고 함께하는 것, 공동체가 됩니다. 사람들은 지금 춤추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춤추기로 결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저 춤을 출 뿐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어떤 새로운 것,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보기도 합니다. (발명품 62)
아주 멋진 시각적 비유고 멋진 은유로군요. 춤추면서 행해지는 움직임의 목적은 장소이동을 가급적 빨리 하거나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고 움직임 그 자체가 중심이 되고, 움직임은 더 이상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군요.
저도 그렇게 봅니다. 자기준거적인 움직임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것입니다. 춤추기가 춤추기의 목적인 것입니다. 춤추기는 춤추기를 통해서 성립됩니다.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당신은 걸어감으로써 길을 만든다'You lay apath by walking it.라고 길은 영원한 것도 이미 완성되어 놓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길은 움직임의 순간에, 걸어감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발명품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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