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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체 내부에 도달하는 많은 자극과 인상들이 신경체계에서 하나의 연관(관련)으로 바뀌는 것이지요. 그게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신경체계 속에서 벌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산출과정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말이지요.
1. 실재표상 [인식은 무엇인가요?]
그러면 지각의 과정은 어떻게 서술되고, 인식은 무엇인가요?
인식은 신경체계 안에서 다양한 느낌들 간의 결합이 생겨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여기 뭔가가 있어서 여기저기 뛰어 다니고 발이 여섯 개이며 날개도 갖고 있으며 또 웅웅거리는 소음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을 쏘기도 하고 그래서 통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걸 뭐라고 부를까요?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다양한 느낌, 지각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쏘였을 때의 통증, 눈으로 본 느낌, 들리는 소리 등을 연관 지어서 다른 사람에게 말벌에 쏘였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쏘여서 아팠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어서, 비록 자신은 여태껏 그냥 벌에게 쏘인 적 밖에는 없지만 말벌에 쏘였다는 말을 듣고 뭔가를 떠 올릴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실재표상이 생겨나고 그래서 우리는 외부에 실재하는 뭔가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2. 대상[이 창조됨]
제게는 그러한 인식 과정이 아직 분명하지가 않군요. 여러 가지 지각들을 연관 짓는 과정이 우리 속에서 어느 시점에선가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것은 말벌이야!'라는 최종적인 인상이 생겨나지요.
제 생각에는 인식이 최종적인 결말에 이른다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인식이란 끊임없는 과정이고 늘 순환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일 뿐입니다.[무상] 어떤 것을 인식하자마자 이미 그것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말이지요. 인식에 대한 저의 생각을 과정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총체적인 감각활동, 근육, 감각은 중단없이 상호작용을 만들어 내고 그러한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해서 대상이 창조됩니다.
3. 무상
저는 제가 지각하는 대상을 고정적인 것으로 체험합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일시적이나마 인식과정의 결과물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결과물들은 당신의 과정학이 말하듯이 계속되는 변동의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아니요. 우리가 대상(객체)이라고 말하는 것은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의, 똑 같은 바로 그 대상을 지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당신이 아침에 거울 앞에 서 있더라도 당신은 항상 다른 당신을 봅니다.
4. 상수
그렇지만 지금까지 저는 늘 나를 되풀이해서 인식해 왔습니다. 대상 그리고 얼굴들은 반드시 내 속에서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인상을 불러 일으키는 (인식과정의 결과물로서의)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서 거울에서 보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라는 확신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강조컨대 당신이 거울 속에서 보는 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계 속에서 결코 또 같은 '바로 그것'을 보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이런 안정적인 인상이 근거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이런 현상을 수학적으로는 상수를 산출해내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변형의 과정에서 산출되는 상수 혹은 고정가치 말이지요.
5. 신경체계의 상수 산출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 예를 들 수 있나요?
가령 주사위를 들고서 모서리와 평면을 관찰해 보세요. 주사위라는 상수(변하지 않는 모습)를 산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대답은 '움직임(운동)과 그때 생겨나는 관점에 따른 시야의 변화를 통해서'입니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므로써, 손으로 주사위를 굴림으로써 운동근육의 활동과 감각적 활동 간의 새로운 연관성이 생겨나고 그때 신경체게는 변하지 않는 것을 산출해내게 되는 겁니다. 중요한 점인데 이때 신경체계가 뭔가를 산출해내는 과정에서 어떤 능력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예를 들어, 주사위와 같은 어떤 대상에 붙인 이름은 근본적으로 보면 우리 신경체계의 능력이고 이 능력이 있음으로 해서 변하지 않는 뭔가를 산출해낼 수 있습니다. 대상과 우리가 습관적으로 객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有名萬物之母] 자세히 보면 변하지 않는 뭔가를 산출해내는 우리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한 우리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유기체 내부로 베껴지는 어떤 외적 질서를 상정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안정적인 인상들이나 지각들을 정당화시킬 수가 있군요.
옳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가 사용하는 산출해냄Errechnen이라는 개념으로 다시 한 번 되돌아가고 싶군요. 그 개념은 'Er-'라는 마술적인 전철을 갖고 있는데 이 전철은 적극적인 과정과 창조의 모멘트를 암시합니다. 아직 없는 어떤 것이 창출됨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현실을 'er-finden'(발명하다), 'er-rexhnen'(산출하다), 'er-kennen'(인식하다)라고 말할 경우, 이때는 이미 있는 것을 수동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떤 창조적이고 활기찬 과정들이 문제가 됩니다. 뭔가가 산출되고 발명되는 것이지 발견되고 드러내지는 것이 아닙니다.
6. 전도몽상
도대체 그게 맞는 말입니까? 현실세계와 지각된 세계간의 상호결합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색을 지각하는 문제로 되돌아가 보더라도 붉은색이라는 것이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관찰자의 눈에 생기는 인상임은 당연히 맞긴 하지만 의식에게 빨간색이 하나의 색으로 다가오는데 이유가 되는 객체 자체의 특수한 구조가 역시 있어야 한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까?
저는 오히려 거꾸로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붉은 것으로 나타나는 어떤 대상이 있다고요. 그러면 이러한 색에 대한 인상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 되지요. 어떤 가정이 여기서 발견됩니까? 빨갛게 칠해진 대상이 바깥 세상에 존재한다고, 그리고 저의 지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다름 아니라 붉게 칠해졌다는 사실이라고 저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거꾸로 물어 봅니다. 우리는 그 객체가 빨갛다는 것을 어떻게 아냐고요. 그러면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글쎄, 명백하잖아요? 우리가 보잖아요?"라고. 이게 뭐를 의미하냐 하면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는 것으로부터 밖에 있어야 하는 것을 추론해냅니다. (실재표상이란) 그야말로 사유에 의해 만들어진 형상인 것이지요.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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