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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이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사물들에 대해, 그것들이 마치 관찰자와 독립적인 실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씁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도 관찰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관찰자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하고 쓰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쓰기 그 자체의 과정 속에서 주어진 것으로 보통 생각하는) 어떤 것의 생산과정들에 대해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사고가 어쩌면 새로운 종류의 말하기와 쓰기를 필요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함축할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몯느 사고의 순환성을 위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강화하기를 원한다면, 선생님을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일상생활의 확고하게 정착한 실재론은 (이번에는 새로운 체험 양태들을 낳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세계관으로 점차 변형되어야 합니다.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것입니다. 이러한 설득 작업은 신속한 이해에 경도된 세계에서는 약화되고 있지 않나요?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누구도 확신시키고 싶지 않고, 사람들을 순환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혁명가가 아니며 내 자신을 세계를 변화시키는 임무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단지 어떠한 과정들이 어떻게 해서 어떤한 존재[실체]들을 산출하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게 답니다. 나는 오늘도, 내가 마치 무한한 양의 시간을 가진 것처럼, 급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나만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었을 적에는 - 심지어 60년대 초반에도 - 사정은 어쩌면 이와 달랐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견해들을 확신시키고자 했습니다. 나는 이제 이러한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사람들을 확신시키려 애쓰면 애쓸수록, 너는 점점 더 믿을 수 없게 되는 거야.' 나는 그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함으로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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