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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모든 종류의 체험이 정당하다고 매우 강하게 옹호하는 이러한 견해가 윤리적인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재가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관념이 권위적이고 보편타당한 진술들을 가질 수 있다는 신념과 부합한다는 것을 잊어야 합니다. 이것들은 어떤 종류의 체험을 불신하게 하는 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진술을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실재에 준거하는 것입니다. 권력, 지배 그리고 통제에 기초를 둔 문화에서,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사물에 대한 그 자신의 견해에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해 줍니다. 그렇지만 실재에 다가갈 수 있는 단일한 특권적 접근권이 없으며, 지각과 환각이 체험의 현실적 과장에서는 구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인간이 '일이 이러이러하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어떤 기준을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바로 그 가능성이 공통적인 통찰의 공간, 협력의 영역을 열어 놓습니다. 다른 사람은 내가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는 정당한 타자가 됩니다. 우정, 상호존중, 그리고 협력이 나타납니다.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일원우주는 다원우주로 바뀝니다. 이 다원 우주 안에서는 무수한 실재들이 타당성의 다양한 기준에 준거해 타당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스스로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있음에서함으로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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