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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과학계에서 일어나는 그와 같은 인기의.격동을 어떻게 체험했나요? 한때 선생님이 칸트나 비트겐슈타인과 비교되었던 시기에, <인지생물학>은 금세기에 가장 중요한 논뮨으로 분류되었고, 그 저자는 "떠오르는 스타"로 분류되었습니다. 선생님 개인을 향해 나타났던 숭배는 때로는 약간 불가사의했습니다. 한 유명한 인공두뇌학자이자 일찍이 체계적이고 생탸학적아누사유의 주역이었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임종 자리에서, 생명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본질적인 자극들은 칠레의 산티아고위.'움베르또 마뚜라나'라는 사람으로부터 나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하더군요.
분명히 내 평범한 삶은 내 작업이 받아들여졌다는 행복감으로 인하여 약간 변했습니다. 무수한 초대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한때 '신경생리학의 에디트 피아프'로 불렸습니다. 인기 덕택에 더 많이 여행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많은 영역들에서 단지 스쳐지나가는 스타였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신경해부에서의 내 태제에, 그 다음 신경생리학에서의 내 작업에, 마지막으로 논문 <인지생물학> 등등에 환호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어느 날, 어떤 다른 주제가 새롭고 중심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개인들의 열광은 언제나 한정된 지속만을 갖습니다. 사태는 지나갑니다. 나는 나에게 쏟아졌던 찬사들을 결코 중요하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내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건 내버려두었습니다. 이것이 자만한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나는 어떤 유혹들, 특히 명성의 유혹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인식의 나무>의 첫 부분에 그려져 있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을 기억하나요?
1962년 나는 환각제들의 '정신확장' 효과를 연구하고 있던 내 친구로부터 호출을 받았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앨더스 헉슬리의 논문 <지각의 문들>에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LSD(마약) 실험에 나를 계속 초대했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대답되기를 원했던 어떠한 질문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양했습니다. 어느 날 -1963년이었습니다 - 그가 나를 다시 불렀는데, 이번에는 연관된 질문이 생겨났기 때문에 수락했습니다. 나는 인간 신경체계가 LSD를 먹은 뒤에도 정상적으로 계속 기능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우리 집에서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들었습니다. 탁자 위에는 책이 몇 권 있었습니다. 친구가 준 LSD가 작게 부풀려진 종이조각들 형태로 책들 위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것들에는 서로 다른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그림들 - 재규어, 태양, 달 - 은 특정한 양을 가리켰습니다. 나는 '태양'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과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 <가시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이 그림을 관찰했습니다. 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예수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침내 네 명의 사람들이서로 다른 유혹들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이 해석은 전적으로 나의 것입니다.
예수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는 나이든 남자는 무관심한 피상성의 유혹을 나타냅니다. 그는, 연루되어 있고 관련되어 있지만 냉정하고 침착하게 보이는 예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내버리세요. 그럼 당신은 아주 오래 살 수 있을 거예요." 또 다른 남자는, 그가 무언가 말 할 것이 있다는 인상을 보이려 애쓰면서, 예수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 속삭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겸손하게 보이려고 꾸미는 허영의 유혹을 상징합니다. 예수에게 가시면류관을 얹어 주고 있는 남자는 질투의 유혹을 상징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불만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합니다. 그림에서 네 번째 인물은 예수의 외투를 그러진 채 당기고 있습니다. 예수의 자유와 가능성들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이 인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이 남자가 확실성의 유혹을 상징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대안들이 없는 세계에, 성찰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네 가지 유혹들을 전망들의 문제와 명성의 위험들에 어떻게 연관시킵니까?
나는 허영, 피상성, 질투, 확실성의 유혹들이, 당신이 더 잘 알려지고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될 때 직접적으로 작동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아부하는 속성들의 목록을 믿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지도 모릅니다. 특별한 누군가로 간주되는 것은 사로잡힘의 한 형태입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이 뭐라뭐라하는 속성들을 자신의 뛰어난 자질들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내가 볼 때 맹목적으로 보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서 보는 것 - 그것은 결코 내 자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내 자신의 인성이 아닙니다.(함으로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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