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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설법은 집착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최선의 방편입니다. 넘어져서 괴로워하는 이는 일어나게 해주고, 오래 서 있느라 힘든 사람은 눕게 해줍니다.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많이 먹게 하고, 과식하는 자에게는 조금씩 먹으라고 일러줍니다.

법은 인연 따라 설해지므로 그 하나하나가 다 진실합니다. 중생의 미망은 제각기 다른 상황과 조건 속에서 일어나므로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제각기 다른 그 원인을 해결해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 인연법을 무시하고 문자와 형상에만 집착한다면 부처님 법은 이미 거기에 없습니다. 부처님은 '이것이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고 다만 그 순간에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과 미혹을 부서뜨려 줄 뿐입니다.

물은 본래의 자기 모양이 없습니다.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만들어냅니다. 그때그때 모습이 바뀌므로 어떤 대상과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막으면 고이고, 차면 넘치고, 이쪽을 막으면 저쪽으로 흐르고, 사방이 막히면 조용히 기다립니다. 이러한 물의 모습이야말로 자기 모양을 갖지 않는 전형이라 할 만합니다.

우리도 그처럼 본래 고칠 것이 없으되 얼마든지 모습을 바꾸어나갈 수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맞추고 자식에게 맞추어가며 그들과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고쳤던 부분을 다시 바꿔야 할 때가 오면 달라진 상황에 맞추어 다시 바꾸어나가는 것, 이것이 인연에 따라 자신을 맞추는 도리입니다.

규정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풀어버리는 것이 상을 떠나는 길, 모양을 떠나는 길입니다. 마음이 물처럼 흘러갈 때 우리는 점점 더 자유로운 상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상이 상이 아님을 알 때 깨달음을 얻는 이치입니다. 제상이 구족하다는 가르침은 규정할 기준이 본래 없다는 뜻이며, 고정된 상이 본래 없으므로 '이것을 하라'거나 '이것을 하지 마라'는 가르침도 다만 인연에 따라 생길 뿐입니다.[각주:1] 

 

T1000.0 : 부처님은 <금강경>을 설하면서 설한바 없음을 강조한다.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하지 않는데 그런 정해진 법은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이른바 불법이라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所謂佛法者 卽非佛法].'고 한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설하면서도 설한 바를 부정하여 법에 대한 집착을 버리도록, 법조차 버려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데, 이를 이름하여 무유정법이라 할 뿐이다. <금강경>도 인연따라 설해진 방편이며 강을 건너면 버려할 뗏목이다. 정해진 바가 없다는 것, 실체가 없다는 것이 무유정법이며, 실체가 없어 인연을 따라 이루는 것이 그 요체인데 인연을 따라 이룬다는 것은 정법에 머물지 않는 무유정법의 중도를 행하는 것이며, 이는 연기적 질서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며 모두가 어울려 존재하는 자연의 활동에 일치하는 삶이 고통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얻는 길임을 깨닫는 것이다. 자연의 활동과 한방향을 이루는 것이 인연을 따라 행하는 걸림 없는 자유이고 최고의 행복으로 그 공덕이 한량없다.   

 

 

  1. 법륜스님, <금강경 강의> p37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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