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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의 고원들

그냥

T1000.0 2012. 12. 11. 15:01

물론 상을 여읜다는 것이 쉬운 일은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도 순간순간 온갖 상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부드러운 이불 속에 누워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사실 아무 괴로울 일이 없는데도 저 혼자 생각에 사로잡혀 과로워하는 것입니다.

바람 불고 비 오고 햇빛 비쳤다가 눈이 오고, 그렇게 여러 모습으로 흘러가는 게 세상입니다. 본래 그런 세상의 움직임을 가지고 시비하고 온갖 상을 짓고 거기에 빠져 죽네 사네 아우성을 치는 게 중생입니다. 그런 이치를 안다면, 모든 괴로움이 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안다면, 정말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손에 꽉 움켜쥐고 있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이것이 방하착放下着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담배를 끊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에는 담배를 끊는 것보다 쉬운 일이 없습니다. 그냥 안 피우면 되는 거지 거기에 뭐 특별한 방법이 필요치 않습니다. 돈 들고, 냄새 나고, 눈치 보이고, 건강 나빠지니 오히려 담배를 피우는 게 어렵지 담배를 끊는 데에는 아무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물론 담배에 중독된 사람이 들으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데 남의 속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느냐 그러겠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사실입니다. 담배를 끊는 방법은 이 순간부터 피우지 않는 것뿐입니다.

다람쥐가 숲 속을 뛰어다닐 때, 이 바위와 저 바위는 왜 이리 멀고 이 돌은 왜 이렇게 크고 이 나무는 왜 이렇게 높냐고 따지면서 다닙니까? 나무가 높으면 높은 대로 열심히 올라가고, 작으면 작은 대로 재빠르게 올라가고, 사이가 많이 벌어진 바위는 있는 힘껏 펄쩍 뛰고, 가까이 불어 있는 바위는 부지런히 걷고, 아무 불평불만 없이 주어진 조건 그대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처럼 하나하나 다 따져가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자면 다람쥐도 아마 숨이 넘어갈 겁니다. 다람쥐가 어떻게 도토리를 찾습니까? 그냥 찾으러 다닙니다. 이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냥 벗어나면 됩니다.

모든 상과 괴로움과 집착 역시 담배를 끊듯이 그냥 내려놓으면 됩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을 그냥 내려놓고, 남편에 대해서 집착을 그냥 내려놓고, 아내에 대한 집착을 그냥 내려놓으세요. 머리가 아프도록 생각을 많이 하고 괴로워하는 건 단지 오래도록 습관이 되어버린 망상이 나도 모르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꽉 움켜쥐고 있는 자기 생각만 내려놓으면 그만입니다.[각주:1]

 

T1000.0 : 그냥, 내려놓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아보인다. 하지만 꿈처럼, 환상처럼, 물거품처럼, 그림자처럼 본다면 그냥 내려놓기는 쉬운 일이다. 이슬처럼, 번개처럼 본다는 것은 은유가 아니다.[一切有爲法 如夢幻浦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1. 법륜스님, <금강경 강의> p4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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