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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변용

T1000.0 2012. 12. 11. 14:25

'상황은 이미 일어났다'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명제입니다.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한 상황이 지금의 내 현실입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좋았을 걸'하고 생각한들 모두 번뇌에 불과합니다. '나는 저 사람과 맞지 않아'하고 고집하는 마음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세상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와도 맞추어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내 의지대로 상황을 바꿔 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바꿔 살고자 하면 그만큼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작은 나무막대기가 필요한데 큰 막대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칼로 잘라내 작은 나무막대기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어진 여건을 바꾸려면 노력과 수고를 당연히 여기고 기쁘게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을 확연히 안다면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고칠 것이 없지만


삶의 순간순간에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기다리는 버스가 빨리 오지 않는다고 마음이 바쁜 사람, 차를 타고 가면서 사고가 날까봐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스가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 타고 난 뒤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짧은 순간순간들이 연결되어 이루지는 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을 이루는 그 중요한 순간순간들을 놓치고 망쳐버리기 일쑤입니다. 조건이 나쁠 때에는 좋아지기만을 바라느라 눈이 멀고, 조건이 좋아지면 이제는 그 좋은 조건이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 속에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세상에는 본래 이것은 고쳐야 하고 저것은 고치면 안 된다는 규칙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숲 속의 나무들은 본래 스스로 완전한 나무지만, 대들보로 쓰이거나 서까래로 쓰이기 위해 필요에 따라 잘리기도 하고 깎이기도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과 만나 살 때에는 나의 이런 점을 고쳐야 하지만 저 사람과 살게 되면 전혀 다른 부분을 고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고쳐야 할 점이라는 게 미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사람 때문에 고쳐야 한다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고쳐가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고칠게 없지만 동시에 무엇이든 다 고쳐야 하는 게 이치입니다.[각주:1]

T1000.0 : '아무 것도 고칠게 없지만 동시에 무엇이든 다 고쳐야 하는' 다시말해 이미 완전해 얻을 것이 없으면서 무한히 변용되는 진여자성.



  1. 법륜스님, <금강경 강의> p39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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