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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에서 '깊은 반야바라밀을 닦는다'고 하는 것은 이것을 가르킵니다. 깊다는 것은 언어 표상 곧 이미지에 의한 관찰이 아니라 지금까지 익혀 왔던 언어 이미지와 형상으로부터 벗어나서 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의 출발로 모든 법이 허상인 줄 알고[無疑],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과정에서 그 생각에 따라 욕심 부리지 않고[無貪], 성내지 않고[無嗔], 마음의 흐름을 그냥 지켜보는 것[觀]이 '공관'이 됩니다. 1
T1000.0 : 언어 이미지에 매여 사는 것과 언어 이미지에 메이지 않는 삶의 차이는 전자는 좋고 나쁨이 있지만 후자는 좋고 나쁨을 떠나 좋음만 있는 것인데 이 좋음은 전자의 좋음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전자의 좋음은 평안으로 가는 좋음, 기쁨이 아닌 불안한 기쁨, 기쁨 속에 슬픔도 키워가는 기쁨인 반면 후자의 기쁨은 평안으로 가는 고요함 속에서 기쁨을 기쁨으로만 늘 경험하는 것이다. 전자의 눈으로 보기에 좋고 나쁜 일이 후자의 눈에는 날마다 좋은날로 경험되는데, 이는 위의 깊은 반야바리밀을 닦는 것처럼 허망분별로 관하기 때문. 오늘 하루도 내가 생각을 좆아가지 않고, 그 생각이 허상인 줄 알고[무의,무탐,무진], 지금 여기를 바르게 분별[관]하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 볼 일이다.
- 정화스님 풀어씀, <중론> p3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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