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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부처님의 행 佛行
법달 스님은 칠 년 동안 <법화경>을 외웠다. 그러나 마음이 트이지 못하여 <법화경>에서 바른 법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을 몰랐다. 그리하여 혜능 스님을 찾아와서 물었다.
법달스님: <법화경>에 대해서 의문점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혜가 뛰어나시니 저의 의문을 해소하여 주십시오.
혜능대사: 법달이라는 이름의 뜻은 법에 대해서 깊이 통달했다는 것인데 그대의 마음은 통달하지 못했고, 경전 자체에는 의문이 없는데 그대의 마음에는 의심이 있네 그려. 의심하는 그대 마음에 잘못이 있는데도 그대는 그것을 모르고 바른 법을 구하지는 구먼. 마음이 바른 선정 상태에 있는 것이 경전을 지닌 것이지. 나는 여태까지 글자를 모르므로 그대가 <법화경>을 한 번 읽어주겠는가. 듣고 나면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네.
법달스님께서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혜능 스님께 읽어 드렸다. 대사께서는 듣자마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을 바로 알아치라고 법달 스님께 <법화경>의 취지를 이야기해 주셨다.
혜능대사: <법화경>에는 많은 말이 없네. 일곱 권이 모두 비유와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지. 여래께서 삼승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단지 세상 사람들의 근기가 둔하기 때문일세. 경에서는 오직 '부처의 수레' 한 가지만 있고 다른 수레는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네. 그러니 부처의 수례만을 구하려고 해야지 그밖에 다른 수레를 구하려고 하지 말게. 다른 수레를 구한다면 자신의 청정한 마음자리를 모르고 헤멜 것이네.
<법화경>의 어느 곳에서 오직 부처의 수레만이 있다고 했는지 그 대목을 그대에게 설명해 주겠네. 경 가운데 '모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오직 한 가지 큰일을 해야 하는 인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대목'이네. 이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겠네. 사람이 허망한 분별을 바탕으로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근원은 비고 고요하여 삿된 견해를 떠날 수 있네. 삿된 견해를 떠나는 것이 해야 할 '한 가지 큰일'이지.
안팎으로 헤매지만 않으면 삿된 견해인 분별의 두 극단을 떠날 수 있네. 밖으로 헤매는 것은 모양을 집착하는 것이며, 안으로 헤매는 것은 빔(空)에 집착하는 것이지. 그러므로 밖으로는 모양을 보되 모양을 이루는 연기법의 공성을 알고 모양에서 모양을 분별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떠나고, 안으로는 빕을 보되 빔 속에서 인연따라 모든 것들이 성립되고 있는 것을 알아 빔에서 빔을 집착하는 마음을 떠나야 하네. 이것이 안팎으로 헤매지 않는 것이네. 이와 같은 법을 깨달은 사람은 한 생각에 마음이 열릴 것이니,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고 할 수 있지.
마음이 열렸다는 것은 지혜로써 사물, 사건을 보는 부처님의 지견이 생겼다는 것이네. 부처란 깨달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네. 마음을 연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온 까닭을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으니,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開), 보이는 것이며(示),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 하여(悟),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네(入).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어가게 하는 네 가지 문을 한 곳을 통해 들어갈 수 있으니, 그것은 부처님의 지혜인 깨달은 지견이네. 깨달은 지견으로 본래 청정한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 번뇌의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지.
법달스님,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자리에서 언제나 부처님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기를 바라네. 사람들의 마음이 삿되면 어리석고 미혹하여 잘못된 일을 하면서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열고, 사람들의 마음이 바르면 지혜로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지고서 스스로 부처의 지견을 열지.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고 부처의 지견을 여는 것이 번뇌의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네.
이것이 <법화경>에서 말하는 '부처가 되는 곳으로 가는 오직 하나의 수레(一法乘)'라는 가르침이네. 하나의 수레를 세 개의 수레로 나눈 것은 미혹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므로, 그대는 하나의 수레인 부처가 타는 수레의 가르침만을 의지하도록 하게.
법달스님, 마음으로 실천하면 <법화경>의 가르침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지만 실천하지 못한다면 <법화경>에 의해서 얽매이게 되며, 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자기 뜻대로 굴릴 수 있으나 마음이 삿되다면 <법화경.의 가르침에 의해서 굴림을 당하게 되네.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의 가르침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가르침과 같고 중생의 지견을 갖는다면 <법화경>에 의해서 묶이게 되지. 내 말은 부지런히 법에 의지하여 수행한다면 곧 경전을 뜻대로 펼칠 수 있다는 것이네.
법달 스님은 혜능 대사의 가르침을 한 번 듣고서 그 말끝에 크게 깨닫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올렸다.
법달스님: 스님! 일찍이 <법화경>의 가르침을 뜻대로 쓰지 못하고 칠 년을 <법화경>에 메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자유자재로 써서, 생각마다 부처의 행을 닦도록 하겠습니다.
혜능 대사: 부처의 행을 하는 것이 부처일세.
이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깨닫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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