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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저의 아내와 저는 당시 베를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빈에서는 제가 유대인 할아버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었지만 베를린에선느 저와 저의 가족에 대해서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우리는 베를린과 베를린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의 건방짐, 그들의 재치, 그리고 독재정권과 아돌프 히틀러의 곡예에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수 있게 했던 그들의 아이러니한 태도들 모두르 좋아했지요.

국가사회주의 권력의 중심이자 제국의 수도에서 일을 찾고 살아남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나요?

저는 거짓말하고 소위 아리아족 증명서를 거짓으로 적었지요. 저는 뭔가 잘못된 것은 그들이 찾아내야 하는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때로 국가사회주의 관리들이 찾아와서는 아리아족 증명서를 빈으로부터 보내도록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야 확인이 되니까요. 물론 즉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지요. 그리고는 빈의 공무원들의 누구나 아는 꾸물거림에 대해서 농담 삼아 얘기했습니다. 당시 연구소의 소장은 저의 아리아족 증명서에 뭔가 잘못된 것, 맞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금 생각에) 저를 여러 번 보호해 주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발견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관리들의 요구도 드물어졌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인츠 폰 푀르스터의 아리아족 증명서를 확인하는 따위의 일 말고 다른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발명품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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