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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상과 이념이 구원의 가르침(숭배의 대상)으로 바뀌는 것을 막으려면 어떤 언어 혹은 형식이 발견되어야 할까요?

 

그와 관련하여 저는 늘 제안했었습니다. 윤리와 도덕을 구분하자고 말이지요. 제 견해로는 도덕이 외적이며 분명합니다. 반면 윤리는 내재적으로 머물러야 하며 개개인의 행위에 어느 정도 젖어 있어야 합니다. 제 생각에 도덕은 전제적(독재적) 요구, 설교, 규정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그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우리의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어떤 가르침을 강제하고 또 강제적 체계를 만들어 냅니다. 여기서 <논리철학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적은 걸 상기하고자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만약 <넌 해야 해!>라는 형식의 윤리 규정이 제시되면 첫 번째 드는 생각은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이다"라고 썼습니다. '넌 해야 해!'라는 말은 즉시 처벌에 대한 생각을 볼러일으킵니다. 만약 윤리가 도덕 혹은 도덕주의로 바뀌면 이상적인(바람직한) 것에 다가가는 순간 복종시키려는 전략이 생겨납니다. 그러니까 윤리에 있어서는 늘 '내가 해야 해!'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내 행동을 내가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묶여 있음이라는 이념을 윤리적 법칙으로 부르는 것은 제가 볼 때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발명품 261)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은 선생님의 고찰들에서 윤리적 규범을 이끌어 내기를 제안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을 창조하거나 보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항상 행동하라.'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규범의 정식화는 윤리를 도덕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나는 우리 대화의 이 지점에서 , 우리가 윤리와 도덕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비록 이러한 구분이 언뜻 보기에 다소간 자의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해도 말입니다.

도덕론자들은 규칙들의 고수를 지지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진술들과 이상한 생각들에 권위에 부여해 주는 외적 준거로 간주합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책임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합니다. 도덕론자로서 행동하는 사람들은 동시대 인간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규칙들과 규범들을 옹호하는 것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타자들을 지각하고, 그들을 중요하게 간주하며, 그들을 인정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도덕론자들처럼 주장하면서도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윤리적이지 않은 도덕론자들이라거나, 또는 그들이 보통은 부도덕한 채로 있으려 하면서도 실제로는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각각의 경우들에서 윤리학의 가능성과 타인의 존재에 의해 감응될 가능성은 다른 인간이 정당한 타자로 인정될 때에만, 그리고 한 사람의 행위들이 다른 사람의 행복에 미칠 수 있는 결과들이 성찰될 때에만 출현합니다.

윤리학은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함으로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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