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자기연관성은 2차 수준의 개념들에서는 부정되지 않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자기연관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존재론적 사유의 토대 위에서가 아니라 상당히 역동적인 개념 틀이라는 기초 위에서 가능합니다. 고전적인 논리학은 '존재'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진술은 진리 아니면 거짓이어야 하지요. 그러나 역설(패러독스)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상황의 역동성이 새로 도입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의 존재(있음)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고 이행(되어감)에 대해서 말하게 되고 시간차원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시소같은 메커니즘이 생겨서 긍정이 부정을 부정이 긍정을 낳게 되는 거지요. 진술의 진리는 거짓을 낳고 거짓은 진리를 낳습니다. (발명품 191)
자기연관성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당신이 어떤 논리적 틀을 사용하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어느 날 비유클리트 기하학이 발명되었습니다. 유사하게 얼마 전에 비아리스토텔레스적인 논리학이 발전되어서 오늘날 다양한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많은 저자들은 역설이 논리학의 독약이 아니라 자기준거적인 개념들, 예를 들어 목적, 의식, 인식 등을 다루기 위한 또 다른 자산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92)
T.
"그래서 어떤 상황의 존재(있음)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고 이행(되어감)에 대해서 말하게 되고 시간차원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들뢰즈의 '되기' 개념과 같이 사유해 볼 것- 연구과제.
'사구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립문자[도덕이 아닌 윤리] (0) | 2020.02.28 |
---|---|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을 피할 마법[사실과 생각] (0) | 2020.02.27 |
< 세계는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 (0) | 2020.02.26 |
*인간에 대한 이해 (0) | 2020.02.25 |
실제론적 전제의 오류 (0) | 2020.02.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