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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신호를 가지고서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납니다. 제 생각에 정보란 지각하는 의식 밖에 존재하는 사용대상이 아닙니다. 책, 신문,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 교통표지판 등은 그러니까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다만 잠재적인 정보의 운반자일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분입니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역경>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있는 기묘한 닭발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입니다. 이는 특정한 교통표지판을 보거나 붉은 신호등을 보더라도 우리가 운전면허증을 딴 사람이라야 우리에게 그 신호들이 브레이크를 밟고, 중립기어를 놓고 차를 세우게 만드는 정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신호를 정보로 바꾸는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 속에서 진행되는 연산작용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은 그렇게 보면 하나의 개인적인 의미구성이라고 기술될 수 있겠네요.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의미구성은 결코 개인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빨간불에서는 대부분의 차들이 서 있잖습니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로 하여금  안정적인 고유행동을 발전시키고, 신호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신호를 특정행동방식으로 이끄는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빨간불이 오면 브레이크를 밟도록 해 주는) 하나의 문화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정보를 받는다'가 아니라 '형식 속으로 넣어진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사람 자신의 내적 형식입니다. (발명품 155)

 
2.
공과 유식. 식을 빼놓고는 말이 안됨. 유아론과 존재론을 너머. 작용하되 실체가 없는. 무아의 내적형식?

 
3.
선생님은 왜 현재의 소통 모델들을 설명을 위한 자료로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 거죠? 예를 들어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뷰의 준비과정 같은 거 말입니다. 그것들은 매우 간단하고 투명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신자, 수신자, 그리고 연결 채널이 있으니까요. 소통과 성호정향은 정보 전송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언어적, 비언어적 기호체계들 또는 상징체계들을 통해 기능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하루 중 어떤 순간에 어떻게 전화기를 집어 들고, 어떻게 달력에 약속을 메모하며, 마침내 어떻게 전화기를 다시 내려놓는지 서술할 수 있습니다. 분명 나는 정보 전송이라는 생각에 기초한 현재의 소통 모델을 가지고 이러한 관찰 가능한 행위들을 서술할 수 있습니다. 또 방금 만남에 동의했다고, 그래서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설명은 오직 외관에, 보이는 것에 관계할 뿐이고, 내적인 체계 작동들과 그것들이 상호작용의 영역과 맺는 관계들을 지각하는 데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견해로 볼 때, 성공적인 소통 또는 이른바 정보 전송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믿음은, 반복적이거나 순환[재귀]적인 상호작용들의 흐름을 지각한, 그래서 구조적으로 연동된 살아 있는 존재들을 관찰한 관찰자의 논평입니다. 정보 전송에 대해 이야기하는 관찰자들은 또한, 상호 수정된 상호작용을 기록합니다. 그들은 호혜적인 행위를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개념을 창안했습니다. 하지만 이 행위는 그들이 간과하는 구조적 정합성들의 결과(물)입니다. 곧바로 이 관찰자들은 오해나 상이한 지각들을 설명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이러한 공통적 현상들이 언제나, 받아들여진 정보를 기대되는 관습적인 방식으로 처리하기 위해 수용자들을 심술궂게 거부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함으로 141)

선생님은 왜 이러한 모델들과 서술들에 그렇게 불만족스러워 하는 거죠? 그것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호정향의 뛰어난 수단인, 보다 면밀한 조사와 연어 분석을 통해 다듬어질 수는 없을까요? 언어 덕분에 우리는 소통할 수 있고, 단어와 문장을 이용하여 관계들을 정교하게 조율해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어적 상징들은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입니다.

내 견해는 그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언어 현상은 상호작용의 역사를 통해 진화해 온 특수한 합치로부터 출현합니다. 언어 출현을 위한 전제 조건 - '행위들의 조정의 조정' - 을 한 번 성찰해 보세요. 나는 상징들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언어 사용의 '원 상황(ur-situation)'은 일상적인 상황입니다. 2차선 도로의 가장자리에 서서 택시를 잡으려 애쓰고 있는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제 방향으로 지나가는 택시들은 전부 승객이 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마침내 반대쪽에서 달리고 있는 택시를 헤우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눈을 마주친 다음 택시 기사에게 다시 허공에 원을 그리면서 손짓을 합니다. (함으로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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