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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립문자, 진리를 세우지 않는 대화. 점잖은 대화
*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려 하지 않는 사람,
* 자신을 재판관이나 경찰과 같은 지위로 끌어 올리지 않고
* 다른 사람에게 각자의 여지를 부여하는 그런 점잖은 사람
1.
이런 간단한 놀이의 도움으로 그런 표현들이 갖는 독재적 힘에 대한 주의가 생겨났고 이런 방식으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지요.
그 다른 언어는 어떤 모습인가요?
여기서는 외적 준거를 포기한 다른 사람과 저와의 대화가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잠시나마 '세계에 대한 그런 관점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당신이며 우리가 관련을 맺는 것은 밖에 있는 이러 저러한 객관적 실재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러면 뭔가를 말하는 사람의 그때그때의 개성이 부각되는 겁니다. '이것은 이렇다'라는 일반적인 판단이 아니라 '내 생각에는 ~'으로 시작되는 문장이 생겨납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내 생각에는 ~'이라는 자기준거적인 연산자를 사용하게 되며 '그것은 ~이다.'라는 외적으로 존재하는 연산자를 포기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자유롭고 멋진 대화를 허용하는 완전히 다른 관계가 생겨나게 되는 거지요.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가정들의 좌표체계를 넘어서는 그런 다른 언어를 어떻게 좀 더 정확히 묘사할 수 없을까요? 어떤 고정적이고 정태적인 체계를 전제하지 않고서 이 물음에 대해서 말하려면 어떤 형식을 발견해야 하나요?
저도 모르지요. 그저 다른 말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실재라고 생각하는) 놀이를 같이 하도록 다른 사람을 초대하려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바람은 내 말을 (나의 언어를) 잘 구사해서 정치가 됐건, 과학, 시 혹은 무엇이 됐건 모든 대화 속에 나의 윤리가 내재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어떤 문장을 말하더라도 늘 점잖은 사람으로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려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재판관이나 경찰과 같은 지위로 끌어 올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각자의 여지를 부여하는 그런 점잖은 사람 말입니다. 이게 제가 궁긍적으로 올바른 언어와 설명형식을 말하기 위한 어떠한 범주도 어떠한 목록표도 언급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발명품이다 59~60)
2.
당신은 선이나 참, 미 등이 계몽을 통해서 관철될 수 있다고 여깁니까?
당신은 이런 영역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것 같군요. 그런데 무엇이 선이고 참이고 미인지 당신은 어떻게 알지요? 그러한 앎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참과 거짓, 선과 악, 미와 추를 그렇게 절대적으로 나눔으로써 얻게 되는 결과는 사람들이 자신을 재판관으로 승격시키게 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모든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영원한 정의로 파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윤리적 상대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윤리적 상대주의가 논의의 결과는 아닙니다. 저는 다만 소위 보편적 절대적 타당성을 소유하고 있는 그러한 분별들이 당신에 의해서 행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런 분별들은 결코 당신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런 분별들의 관철에 따른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명품 56)
3.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누가 옳은지, 누가 종의 출현, 환경과 적응이라는 현상의 존재와 영향력 등에 대한 진리를 갖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 군요. 대신 당신은 로렌츠가 대변하는 견해에 비해서 그저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견해를 내세우는군요.
맞습니다. 저에게는 누가 결국에 옳으냐 하는 끔찍한 질문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편협함(불관용)과 싸움만이 지배하는 그런 논의에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다른 생각(사고)을 논박하고 싶어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을 물어뜯고는 결국에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다른 관점을 변호하고 싶고, 우리가 로렌츠의 문장들을 뒤집을 수 있고, 말해진 모든 것을 거꾸로 세울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예를 들어 우리 스스로를 우리들의 세계를 발명하는 사람 혹은 산출하는 사람으로 이해한다면 그때 적응의 문제는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런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발명할 수 없고, 우리에게 맞지 않는 것을 어떻게 발명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미 적응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이런 관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관점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 모든 현상의 아비요 어미가 되는 것입니다. (발명품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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